인왕산 산행 및 산책길 나들이
일시 : 2015년 2월 8일
주체 : 개미실 산우회
참가인원 : 이흥우외 15명
개밀실 산우회는 지난달이어 이번달도 참석하게 되어 너무 기다려졌고 또 기쁜 마음으로 산행에 나섰다
나는 중국에서 생활이 많은지라 한국실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수원에 살아온지가 40년가까워지니 가까운지라 서울의 사정에 익숙치도 않으며 서울 주변에 산을 가본곳이 사실 몇군데 못가온터라 인왕산이라는 산에 흥미가 있었으며 나라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청와대 주변이라는것이 더 기라려 왔던 곳이다
오늘도 7시30분에 집근처 권선 매탄역에서 성룡이와 만나서 출발을 하여 화서역에 도착하니 8시다 이흥우대장도 그시간에 도착하고 김인수총무도 도착이다 신성철씨가 도착이 안되어 다음차를 타자는 마음으로 편의점에 들려 따듯한 음료를 먹자고 총무가 제안하여 모처럼 모과생강음료가 있어 마시고 다음 전철을 타고 출발하였다
성대를 지나 의왕에 도착하니 배가 이상하게 반응이 왔다 복통이 온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오면 화장실을 가야하는 절박한 시간이 온다
전철을 탄지 얼마 안되는 가은데 난감한 상황이 전개 된것이다 할수없이 다음에 내린다고 하니 인수총무가 화장실이 타는곳에 있는곳을 알려주어 그다음역에 내려서 시원하게 화장실일을 보고 나오니 다음열차가 전역에 도착되었다고 나왔다
정확히 세네정거장차이다 참고 가면 아마 신경이 날카롭게하여 안절부절 못하고 갈것을 결단을 잘하여 편안하게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하고 흔히는 아니지만 이러한일이 발생할수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하니 화장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어두는것이 상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수총무의 위치는 적중하고 난 일행과 큰차이없이 목적지인 경복궁역 1번출구 까지 도착 합류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총 인원 16명은 경복궁역 일번출구를 나와 사직단 끼고 산행을 시작 하였다
흥우대장이 사직단에 대해서 물어오는데 아는것이 없었다 사직단은 한마디로 제를 지내는 곳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9,075㎡이다.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 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사를 착수하여 설단(設壇)이 완성되자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의 동·서 양단(東西兩壇)을 설치하였는데 동단에는 국사(國社:正位土神), 서단에는 국직(國稷:正位穀神)을 모셨으며, 단에는 주척(周尺)으로 높이 2.5자, 너비 1자의 석주(石柱)를 각기 세워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하였다.
단은 네모반듯하며 세벌장대석을 높이 3자가 되게 하고 한 변이 2장 5척(주척)의 크기로 평면을 설정하였다. 단의 4면에는 3층의 돌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단상 네 귀퉁이에는 구멍난 돌이 박혀 있고 큰 쇠고리가 꽂혔는데, 이는 기둥을 세우고 차일을 치도록 설비하였던 것이다.
사직단에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大祀)와 선농(先農)·선잠(先蠶)·우단(雩壇)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사직단의 설치와 함께 사직서(社稷署)가 생겨 제사의 수발을 맡았다고 한다
우리는 임금이 나라에 일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돌아서 올라서니 단군성전이 있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인왕산 산성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여기 말고도 북한을 빼고 여러곳에 단군 성전이 있다고한다
검색하여 보니
태백산에 단군성전이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궁현리 사이 은적산에
우리가 본 서울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사직공원
전북 정읍시 하모동
전북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전북 남원시 식정동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
국조단군성전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충남 보령시 청라면 소양리 등에 사당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오래된 성은 훼손이 되어 수리를 하여 제법 성이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산행길도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산해하는데 피곤하게 되있었으나 안전사고예방되도록 되어있었다
인왕산은 정상이 338.4미터라고 한다
여기서 인왕산에 대해서 검색한것을 참고로 올려보면 이렇다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필운동, 누상동,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北岳山)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다.
경희궁 뒷편 사직동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앞 인왕산로 1길을 서울성곽이 이어지며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 범바위를 지난다. 서울성곽은 인왕산 정상부로 이어지는데 메부리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로 이어지고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자하문(창의문)과 연결되고 그 다음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인왕산은 고려시대부터 불교사찰이 많았던 곳이며 현재도 5~6곳의 사찰과 암자가 있다. 조선 중기 명나라 사신이 임금을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연유로 필운대(弼雲臺)와 필운동(弼雲洞)의 이름이 남아있다. 필운대에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남아있다(현 배화여자고등학교 교내 소재). 옥인동은 옥류동과 인왕동이 합쳐진 이름인데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북쪽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다양한 이름들이 지어져 있다. 선바위는 인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데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 모자를 닮은 모자바위, 돼지를 닮은 돼지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가 있고 남쪽 능선 정상에 있는 달팽이바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유명하다. 호랑이 굴이 있는 남쪽 능선에 호랑이바위, 정상부에 이르면 뾰족한 메부리바위가 있으며 삿갓모양의 삿갓바위가 인왕산 정상이다. 그외 치마바위, 해골바위, 기차바위, 부처님바위 등이 있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樓臺)가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강희언(姜熙彦)의 《인왕산도(仁王山圖)》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지명이 환원되었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군사적인 이유로 1968년 1월 21일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3월 25일 정오부터 개방되었다.
오늘 개미실 산우회의 산행기를 정리해보면
성곽을 오르면서 청와대가 보이고 서울시내나 남산이며 중요한 서울의 도심을 내려다 보면서 추위도 아랑곳하지않고 산우들은 외설도 정담도 나누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산행을 하였다
매번 그랬듯이 오늘도 바라바리싸온것을 중간중간 나누어 주시는 산우들의 정이 있는 모습은 우리 한국인들의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정성이 너무 고맙고 입만 가는 나의 입장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나의 도리나는 생각을 해본다
정상전에 막걸리와 인주도 겹들인 간식은 술을 잘안하는 나에게도 구미가 당겨 늘 몇잔씩 하는 낙을 갖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잔 마시고 기분이 한결 업되는시간이다
정상에는 삿갓바위에는 산행인들의 인증삿이 나래비를 섰다
우리도 정상에서에서 인증삿을 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불과 한시간 조금 넘은 시간으로 전체 산행시간은 이번에는 가쁜 할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하산이 되었는가 싶고 도로가 나왔는가 싶더니 인왕산 공원길로하여 우리가 왔던 경복궁역쪽에 예약한 식당으로 가는데 한시간은 소요될듯하다고 흥우대장이 이야기 하였다
두시간 정도면 될것이라는 생각은 착오였다 먼저 답사한 이흥우대장은 공원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고 말 이빨바위도 보고 해맞이 전망대등 여러곳의 공원길을 걷다보니 그런대로 볼거리와 테마로 이루어 잘 조성을 하여 놓았다 하산이 종료된듯한곳에 앞에서 언급된 정선의 인왕색도가 있었고 계곡에 바위가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는 명당자리가 있었다
목적지인 식당을 도착하여 우리일행은 메기 시래기매운탕과 뼈다귀 시래기탕에 밥을 먹으면서 반주도 몇잔을 하였다 최고의 음식으로 풍유의 즐거움의 시간이다
내려오는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저세상이야기가 나왔다
살아서는 이세상 죽어서 저세상을 모두 두려워하고 또 하나님과 부처님 마호멧 알라신등 종교를 믿으며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종교를 갖게되는데 저세상은 아무래도 아주 좋은곳으로 이야길 하며 한번가면 나쁘면 돌아오기도 할터인데 돌아오지 않는것을 보면 그곳은 아마 너무 좋은곳이라 안돌아오는것으로 이야기하는것을 보면서 그렇구나 생각의 전환 발상이 우리의 삶과 죽음에서 해본다면 아마 그것이 천당이요 해탈일것이다 이렇게 우리 개미실 산우들은 반주에 겹들여 다음달 문경으로 원정산행겸 시산제을 한다고 하며 예산이 부족하니 산우들을 더 많이 모시고 오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의 푯말을 보면서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들어서서 각자의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였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였다고 산우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좋은일만 가득한 산우들이 되시길 기원하면서 ㅇㅇㅇㅇ
다음산행시에는 중국에서 있을것이다 아쉽지만 시산제와 원정산행은 못함을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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