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광복70주년에 붙여)
광복 70주년 며칠 앞둔 팔월 9,10일 양이틀
개미실 산우 34인은 118차 산행은 백두산 서파북파를 하였다
장춘에서 돈화 발해광장 지나 이도백하로
난 천진에서 연길로 도문 두만강과 회령이 보이는 삼합을 거쳐
윤동주 문학관과 생가를 본뒤에 일송정과 우물을 보고
열차로 이도백화에 모여 모였다
첫날 서파입구에서 상봉하여 천지를 보던그날
모두들 북한땅으로 백두산엘 오면 좋을것을 이구동성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애국가를 부르며 천지를 관람하고 보던 첫날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과 어우러진 천지에서
용천하는 대한민국이 보이고 북조선이 보였다
금강대협곡을 보고 하루를 마감한 산우들 들떠서 난리다
다음날 북파입구에서 다시만나 정상에서
구름이 너무 많아 실망하던 순간에 천문봉 2640미터
서서히 걷히는 구름사이로 드러낸 천지 모습
감탄과 함성이 쏟아져 천지가 들썩였다
와~`아~~~~보인다 천지가 와~~우~~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 조상님이 도우셔서 개벽하였다
삼대가 착한일 해야 본다던 천지를 이틀동안 보았으니
개벽이고 조상님의 은덕에 자랑도 함께 함이다
북파에서는 이쪽저쪽 보는곳마다 형세가 다르고
자연의 오묘함이 다른것은 우리영지가 틀림 없었다
장백폭포로 소천지 녹연담을 내려오면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기상이 다시오고
해동성국 발해의 대조영 223년 세상이 다시오는듯한 기분이다
압록강과 요하강의 요동반도를 호령하던 고구려
송하강 해란강 흑룡강 오수리강 두만강의 기상
간도를 주름잡던 해동성국 발해가 요트림한다
21세기 일제치하 해방70주년에 고한다
만주벌판에서 말다리던 우리조상님들의 기백과
일송성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바치고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깊이새겨 두었네
말달리고 활을쏘던 선구자 만주벌판에서 맹세했네
조국을 찾게노라 거친꿈이 깊은 선구자
독리투사들의 백은평 전투에 본오동전투에 힙입어
청산리대첩을 이끈 홍범도 김좌진장군등 독립투사들의
혼이 깃든 돈화 연길 화룡 용정 왕청 훈춘 도문이여
발해유적지도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도 세운곳이여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말그대로 조선이요 고구려요 발해다
윤동주시인도 심련수 시인도 송몽규시인의 숨결이 들리고
지금은 한반도가 남북한 분단국에 광복 70주년이니
어찌해보기 어렵다만은 통일이 되기전 우리역사 바로알아
익히고 가르치고 넓히고 알려서 통일되는날
백두산 정계비의 서위 압록강 동위 土門강 내용도 밝혀보세
장백폭포로 이도백하가 토문강 송화강 오수리로 흘러 동해로
고구려땅 발해땅 쏘련 블라디보스토크나 녹둔도
간도협약은 무효요 대마도 나라현도 우리땅이었노라
다함께 외치면서 역사 바로알기 시작하세
우리 어른들도 어린새싹들도 역사공부하여
훗날 우리 조상들이 침략은 받았으나 흥망성세가 있었다구
하나도 빼지말고 설움도 영광도 함께 하세
오~~우~~~대한민국이여
2015년 8월 8,9일 백두산 여행 (서파 북파)
전날 도문으로 하여 삼합 용정 윤동주 생가 문학관 이상설 선생역사관과 일송정을 방문하고 열차를 타고 이도 백하 민박집이며 여관으로 도착하여 하루를 묵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이도백하(二道白河 얼도바이허)를 출발하여 서파 산행입구로 갔다 개미실 산우들과 연락이 안되어 답답하였지만 개미실 산우들을 기다렸다 40분 기다리는사이에 맑은 하늘이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것을 보고 백두산 천지 보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실 산우 34명을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한국에서 만나던 식구들이다
기념단체 사진 왼쪽 맨뒤가 나다
인파가 없던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많이 모였다 40%는 한국인이고 중국인이 60%로 더 많다 모두들 이 인원이 금강산가듯 북한으로 올라가면 얼머너 좋을까 하는 생각을 이구동성 이야기하며 표를 들고 들어가며 지문인식을 하고 들어갔다 내일도 이지문으로 확인한다고 한다
버스는 정상 못미처 주차장에 서고 우리는 내리면서 가이드의 이야기에 눈길이 쏠렸다 저기 피레침이 보이니 천지를 볼수 잇다고 말이다
1300여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 정상에서 내려다본 천지는 사람이 많어서 비비적거리고 간신히 보기 바쁘고 사진기를 들이대고 찍는것이 온천지의 사람들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천지를 이쪽 저쩍 다니며 보았다 북한땅이라는 비석도 중국땅이라는 비석도 보이고 핸폰으로 천진 전체를 사진으로 담으려니 사람들이 많어서 할수가 없었다 뒤로 물러서서 찍어야하는데 할수가 없었다
통쾌하고 후련한 천지를 보고 또 구름이 걷히고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을 뭐라고 표현할수없이 아름다웠다 더욱이 개미실 산우들과 함께하는 천지의 모습을 보는것은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였다
그러면서 백두산 정계비가 생각이 나고 또 김일성이 이쪽을 중국에다 넘기고 하였다는 생각이 들고 북한으로 오면 얼머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정계비에 대해서 검색하여 함께 보자
백두산 정계비 비문 내용
청대
오라촐관 목극등은 국경을 심사하여 와보니 서쪽으로는 압록강이요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분수령으로 돌에 새긴다는 내용으로 강희51년 5월15일로
필점식 소이관 이거와 조선군관 이의복 조대상 차사관 허양 박도상 통관 김응헌 김경문 이렇게 쓴것이 없어진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내용은 동쪽의 토문강이다 현재의 두만강이 아니다 이런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서로 땅을 가지고 빅딜을 한것이 들어나고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간도성이 나온다 간도는 다는 아니지만 우리땅이 라고 말하고 싶다 강한 나라가 되어야하고 통일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땅은 빼앗겨 버린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도성만 보면 안된다 러시아가 중국과 서로 땅을 나누어가진 정황이 해방후20년사이에 벌어진다 이것은 우리땅이 러시아 위에까지 있었다는 것이 확연히 들어나는것이다
러시아가 대련까지 내려오고 일본과 러일전쟁에서 패하고 청일전쟁에서 청나나가 패하고 만주국이 만들어지고 하면서 철도권으로 만주협약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국경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꼴이 된것이다 나라가 강해야한다는것 우리는 실감하며 더 강한나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강성 국가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돈화나 훙춘 연길을 돌면서 발해사에 대한 역사유물을 발굴하는 중국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중국 공정이 이런것이구나라는것을 느낌을 받었다
위지도가 아니라도 북간도 서간도의 지도를 보면 백두산 정계비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아닐수 없다 아래지도를 보면 바로 이해가 간다
위의 두지도가 우리땅이라는 명백한 지도라고 보면 된다
우리민족이 살었던곳이며 또 한인학교가 있던 울라지보스또크에는 심련수시인 5형제가 부모님과 함께 강원도 강릉군 란곡리 399번지에서 태어나 이주하여 학교에 다니다가 러시아인들의 학대로 흑룡강성 영안현 신안진 공제촌으로 내려와 살다가 가족이 용정으로 내려와 사는관계로 용정에서 자라고 공부도 하고 또 영안현에서 교감생활도 하다가 왕청현에서 살해된 심련수시인의 일생을 보더라도 우리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전에는 우리민족이 살던곳이고 학교가 세워지고 생활의 터전이 되던곳이 우리땅이라고 할수밖에 없는곳들이다 일제의 간도협약이나 러시아의 남침으로 인한 러일전쟁등이 현재의 지도를 만들어 놓은 최악의 영토가 되었슴을 우리는 알어야할것이다
삶의 터전이고 또 이순신장군이 녹둔도(두만강에 있는 여의도세배의 섬)에서 진을 치고 있던곳이 러시아땅이 된것을 우리는 알어야한다
여행기를 쓰면서 느낀 이야기를 쓰다보니 안타까워 다른곳으로 흘렀다 며칠 여행하면서 더 이야기가 나오것으로 본다
다시 돌아가 백두산 정계비에 대해서는 꼭 우리 민족이 알어두어야할 사항임을 인지하고 서파에서 내려오면서 금강대협곡입구에서 점심을 비빔밥으로 먹고 협곡의 자연의 조화를 보며 다시한번 놀랄수밖에 없었다
삐죽삐죽하게 남은 바위가 여러가지 모양을 하고 협곡에 남아서 깊은 곳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주는 형상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꼈다
많은 인파속에서 나는 개미실 산우들과 함께 전진안마를 받고 닭백숙을 맛있게 얻어먹고 나의 숙소로 돌아왔다 밤이 늦었지만 천지의 환희가 가시질 않었다
이도백하 민박집 주인 길철호씨와 다음날 북파를 가기위하여 잠깐 이야가를하고 새벽 다섯시에 출발을 위하여 잠을 청하고 4시반에 일어나 씻고 가방을 정리한뒤 5시에 출발하여 북파입구에 도착하니 접수하는 사람이 많었다
김철호씨가 출입증이 있어 나는 관리자가 들어가는곳으로 들어거 손쉽게 차량표를 구입하여 들어갔다
그리고 개미실 산우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 가이드가 접수하는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0분도 안되는데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김철호민막집 주인이야기가 거의 맞는 말이다 일찍가야한다고 한말이 실감이 났다
김국철 개미실 가이드가 들어오고 또 개미실친구들이 들어와 함께 40인승 버스를 타고 어느정도 오르다가 찝차로 갈아타고 올라갔다
북파정상은 어제 장상보다 높고 중국쪽으로는 제일 높은곳으로 꼬불꼬불 차는 힙있게 올라가는데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기가 짝이 없는곳을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에는 관리하는 휴게소 집이 지어질정도로 넓은 터가 있었고 세곳으로 나누어 볼수있는 곳이었다
정상부터 내려오면서 보았어야하는데 나는 중간에 두군데만 보았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구름이 자욱하여 천지는 볼수가 없었다
3분이 지났을까 구름이 걷치면서 천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가이드말처럼 산이 가려 보이는곳과 안보이는곳등 부분부분만 천지 보였다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모두들 함성이 쏟아 나왔다 구름이 걷치는 장면과 천지가 햇볕이 드는 장면은 정말 멋지었다 자리를 옴겨 다른쪽을 보는데 멀리 계단이 보인다 저기가 북한에서 내려오는 그야말로 천지 물을 떠볼수있는곳이란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남파에서 오르면 거의 볼수가 있는곳이란다
이렇게 양이틀동안 천지를 볼수있는 행운을 맛보는 것은 천운이라고들 카톡으로 격려를 해주는 친구르이 많었다
한시간정도 정상에서 시간을 보낸듯하다 그사이 우리들은 이슬이를 정상주를 준비한 개미실 친구들이 있어 어제는 못한 몇잔 마시시 더 기분이 좋았다
개미실 산우 친구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이제야 해봅니다
하산을 하여 장백폭포에서 우리를 내려주어 걸어서 장백폭포를 구경하였다
오르곳에 온천이 나와서 옥수수와 겨란삶은것을 사먹기도 하였다 유일하게 천지에서 흐르는 장백폭포를 멀찍이서 감상하고 인증샸도 하고 우리 일행들은 행복감이 넘쳐 흘렀다 잠깐 비가 오는듯하더니 이내 맑어서 더 좋은 관광을 하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소천지와 녹연담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걷기좋게 길을 만들어 놓아 힘든지도 모르고 자연의 야생화도 구경하며 내려왔다 녹연담에 내려오니 식당이 있었다 모두가 코스처럼 시간이 맞었다
여기서는 돌솥비빕밥이었다 어제보다는 맛이 있었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처음 접수한곳에 도착하니 2시가 안되었다 김철호씨와 김국철씨가 아는사이라 버스를 같이 타고 와서 내가 묵은 숙소에 내려주고 갔다 알어보니 4시반 기차가 있다고 한다
김철호씨는 이도백하에서 한족과 결혼하여 처음엔 집에서 민박집을 하다가 지금은 여관처럼 건물을 임대하여 하고 있었다 아침밥을 안주는것이 흠이기는 해도 집도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또 조금 비용을 더주면 서파든 북파는 입장표나 교통편도 또 안내도 버스표도 구입하여 손수 안내를 해주기에 편하고 무리없이 여행할수 있다
물론 언어도 한국어가 어느정도 되기에 더 좋다 한족학교를 다녀서 글자는 모르고 말은 한다고 한다
여행에 불편한것이 하나도 없이 잘 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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