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및 기행문

40. 여보 말이나 시원하게 하고 가지

泉玟 김동석 2014. 12. 28. 23:54

여보 말이나 시원하게 하고 가지

2년 전 일이다

여보세요 윤환입니다

한국에 언제 왔어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중국 천진에서 수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윤환이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한국에 왔다가 상구를 수소문하다가 찾았어요

지금 종우 동생하고 선묵이 친구랑 인천에 같이 있는데요

그런데 상구가 죽어서 삼오제를 어제 지냈다고 하네요

~~어찌된 일이야

가슴이 탁 막혀온다 건강하게 일도 잘하고 천진에서 엊그제까지 함께 운동도하고 형제처럼 지내던 동생이다

지난 7월에 한국에 간다고 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간 사람이 소식이 없어 형 아우하며 지내는 선후배들이 걱정이 많았었다 나도 그랬던 것이다

알고 보니 간암판정을 2월에 받고 일본에서 심층수와 가루약을 받아서 먹고 또 지니고 다니며 치료를 하며 피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미경도 두 대를 샀다고 한다 심층수를 나에게 주고 간 것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속리산 속에 들어가 요양을 하다가 병원에 오는 예약날짜와 가족이 사는 집을 전셋돈을 높여 이사 한집으로 오기 위해 내려와서 해철이내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상구는 해철이네 집으로 주민등록이 되어있고 가족은 법적으로는 이혼이된 부인이 어머니와 딸 둘을 부양하며 살고 있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생활비를 중국우리은행 통장에서 송금해주고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병원에 옴 겨지고 깨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조문을 위해 집을 방문하였는데 이사한 집도 크지는 않은 집이었다 너무 아려왔다 부인은 직장에 나가고 애들은 학교에 가고 어머님 혼자 계셨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어릴 적 세상을 떠서 외갓집 영덕에서 많이 자랐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가 척추가 안 좋아 입원하여 살 때 외할머니 집에서 크면서 공부도 잘하고 장학생으로 대학도 일본유학도 다녔다는 것이다

일본 유학 때 해철이라는 친구를 만나서 중국에서도 또 한국에서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번 일은 해철이를 원망을 많이 하는 눈치였다

사전에 자식이 안 알려주면 친구라도 알려주지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해철이는 우리들도 천진에서 만나서 형 아우 하는 사이로 지냈기에 잘 아는지라 그래도 친구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어머님께 위로를 하였다

천진에서 만나게 된 사연과 그간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짧은 시간이지만 많이 하였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간암이라는 것을 가족은 한 사람도 몰랐다고 한다

전날도 이사를 와서 짐을 풀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중국에서 온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저 세상으로 보낸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닌 눈물만 흘리셨다

나는 해철이에게 전화를 하여 친구 마무리를 잘 해주기를 바라면서 난 천진으로 왔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호랑이에게 먹이 감을 준 셈이 되었지만 이때는 철썩 같이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천진에 오늘날 상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니 해철이가 천진으로 가서 집 정리며 다른 일들을 마무리한다고 갔다고 한다

천진에 와서 찾아보니 모두들 모르고 있었다

수소문하여 찾아내기는 하였는데 뭔가 수상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세상을 떴으면 천진에 알렸어야 하는데 알리지 않은 것이 이상하여 물었다

천진 사람들이 조문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 대답이 없다 부인에게 통장확인을 해보라고 하니 중국회사에서 알아보니 중국한국우리은행과 중국농업은행이라고 알려주어 알아보니

우리은행에서는 한국에서 하루에 뺄 수 있는 한도 만원이 죽은 날부터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중국농업은행도 해철이가 온 날 만원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아주 나뿐 행동이고 도둑이며 이건 형사 사건이라고 찾는다면 바로 구속이라고 상구를 아는 종근이 인태 그리고 종칠이 철표와 경선이도 모여서 해철이가 들으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다음날 해철이는 소리소문도 없이 만원을 더 빼서 한국으로 가서 상구 부인에게 항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상구 사촌 형과 함께 그러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던 집과 상구의 있지도 않은 내연의 처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게 돈을 일부 주고 왔다는 것이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단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님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도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며 나와 주민등록이 함께 있어 오히려 내가 가깝다며 그 동안 한국에서 돈 보내고 하는 거 내가 다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부인은 정약 이혼녀요

사업 후 망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어 이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 카드를 만들어 상구는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동거인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 이유는 상구 큰어머니가 일본 위안부로 끌려가 행방불명상태로 호적 정리가 안된 상태로 어머니가 후에 재가로 시집을 가서 상구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갓집으로 가서 살면서 그냥 동거인으로 호적 정리가 안된 상태라고 한다 와~~~~ 통곡할 일이다

친구라는 사람이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구 배달은 큰형은 60살이 넘은 분이 계시는데 배운 게 없어 도움을 못 주어 미안하고 잘 살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말만 하신다고 한다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리만큼 친한 친구라는 사람이 이 기구한 운명을 욕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상구 부인은 아이들이 만들어 주는 위임장을 가지고 와서 남아 있는 중국 통장 돈을 빼서 한국으로 보내 드렸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 전화 문자로 상구가 천진에서 가끔 만나는 아가씨를 누구와 동서지간이라며 보내고 애꿎은 둘이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문자나 이 메일로 협박하는 일까지 벌리는 사람을 친구로 둔 남편이 원망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한마디 말이나 제대로 해주고 가지

마무리라도 잘 하지 아니면 자기가 잘 해놓고 가든지~~~

애들은 어찌 키우라고 나만 남겨 놓고 가느냐고 한숨이다 할머니가 있어 다행이란다 의지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친구를 법으로 호소를 하여 고소를 하였다고 한다

한참 후에 중재요청이 오더라는 것이다

중재는 무슨 중재거리가 되는지 모르지만 남의 돈을 마음대로 빼갔으면 형사입건이지 법의 잣대가 이래서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지도 않은 중재 장에 나가니 돈이 없으니 분할하여 갚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그러겠노라고 하여 합의 해주고 오는 길이 얼마나 쓸쓸하던지 모르겠다고 한다

근무하던 화인금속 사장은 자기도 이런 줄 모르고 퇴사한다고 하여 사표처리를 하고 간지라 안타까운 일이지만 회사 사정상 2년간 생활비를 매월 보내드리겠다고 하여 이제 그 2년이 지나는 오늘이라고 한다

해철이는 상환을 해준다는 돈은 일원 한 푼도 입금이 안되었다고 한다

법으로 다시 무효신청을 하시지 하니 보고 싶지 않은 얼굴 보기 싫어 안 했다고 한다

수목장으로 치른 곳에 2주년에 가족들과 함께 가보니 해철이 이름으로 꽃다발이 있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쁜 친구를 둔 아들을 원망할 힘도 잃으시고는 한숨만 내시며 아들아~~나는 어찌 살라고 하느냐며 자기가 죄가 많다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나는 한국에 갈 때 마다 집으로 들려 어머님을 뵙고 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려오지만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으랴 오히려 아들 생각만 더 하게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것뿐인걸!

철표가 형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술도 안 먹는 사람이 술이 취하여 전화가 왔다

작년에는 아는 몇몇이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올해는 나 혼자서 집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 한잔 하고 있어요 집사람이 차려 주네요

나도 마음이 찡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니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2주년인데 가보지도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 하실 테니 옆에서 힘이 되어 주시고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세요

이렇게 잊혀져 가는데 잊지 않고 전화 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말끝이 흐려진다

직장은 다니시는 거죠 하니 다니는데 월급이 적어서 힘들어요

이제 대학도 들어가야 하는데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고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들 생각 많이 나시죠

아무 말도 없으시다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말끝이 흐려 지신다

며느리가 힘들게 사는데 어머님이 옆에서 힘이 되어 주세요

그래야 애들도 밝은 모습으로 살지 않겠어요 하니 그래야 하는데 잘 안되네 라고 하시며 또 고맙다고 하신다

손녀가 공부를 잘하여 수능도 잘 보았다고 하는데 걱정이란다

아들아~~~말이라도 하고 떠나지 아무 말도 안하고 떠나서 에미를 힘들게 하느냐며 한탄이다

지난번 부인이 여보 말이나 시원하게 해주고 가면 이렇게 마음고생을 안 하지 하던 생각이 머리에서 맴돈다

 

마음이 아려온다

형님 건강하시지

담배는 그때 끊고 안 피우는 거지 나도 그때 계속 같이 끊었어야 했는데

옆에서 말 하는것처럼 귓전에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