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세계/한국사랑

구담봉과 옥순봉

泉玟 김동석 2013. 3. 16. 14:37

구담봄과 옥순봉 산행기

 

흔히들 사람들은 요즘 자연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번 초등 친구들과 두 달에 한번 모여 회포나 풀자고 모였는데 나이가 이제는 건강을 지키자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공감이 가는지라 산행을 주로 하자는 신임 조남천 회장의 뜻에 따라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고향이 경기도 이천 율면인데 학교가 멀어서 산길로 6키로요 큰길로 가면 10키로도 넘는 곳에 학교가 있는지라 학교도 한 살 늦게 입학하고 가까운 곳 충북에 새로 생긴 학교로 전학을 하여 다녀서 초등친구가 양쪽에 다 있어 어찌 보면 행복한 사람이다

호적상으로는 경기도나 충청도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으니 충북이 고향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도 충청도사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외갓집도 처갓집도 충청도라 더 그렇게 말한다

더욱이 나는 경주김가인데 말머리라는 마을에 집성 촌을 이루고 살았기에 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 고등학교는 이천에서 직장은 수원에서 살았기에 경기도와 친하지만 일반적으로 경기도와는 관심이 없었는데 초등학교 일학년과 육 학년 때 율면과 월포에서 다녔던 터에 근래에 율면 월포의 경기도 초등친구들과 만나는 관계로 가까워지고 있다

이전에는 우리 고향이 음죽현이라고 하여 음성과 죽산의 일부가 합치현 충주목속의 현으로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총곡리는 충북과 오히려 더 가깝게 지냈다

요즘은 교통이 좋아 아무 곳으로 다녀도 좋지만 총곡리는 개울건너 원당리로 가서 버스를 타고 읍내를 가는 것이 통례인데 옆의 마을 월포4리는 경기도로 버스를 타러 다녔다

그런 모임에 대부분 집결 지는 고향 쪽에 집결하여 이동을 한다

10시에 모여서 차량 2대로 이동하여 단양팔경중의 하나인 구담봉을 간다고 한다

해발 330미터라고 회장이 이야기하면서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아주 낮은 산이다 힘들지 않겠구나 즐겁게 다녀오자

라는 친구들의 생각이요 내 생각이었다

장호원서는 일반적으로 제천 박달재를 통하여 가는데 네비로 구담봉을 찍고 가니 3번 국도로 방향을 제시한다

새로 만들어진 도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생극을 지나 주덕과 충주시내를 들어가기 전에 수안보방향으로 가다가 괴산입구를 지나면 월악산 및 충주댐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도로는 즐기면서 가야 하는 꼬불꼬불 길이다

월악 선착장이 나오고 단양쪽으로 안내를 하는 곳을 따라가니 12시 조금 안되어 구담봉 입구에 도착을 하였다

승용차와 버스들이 주차를 갓길에 많이 해놓았다 안전하게 주차를 하고 짐들을 나누어 들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입구에 관리사무실이 있었고 구담봉과 옥순봉에 대한 안내와 단양팔경 안내도 그리고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와 단양팔경이 된 글이 있었다

우선 구담봉(龜潭峰)」은 절벽 위의 바위가 거북이를 닮아 구담봉(龜潭峰)이라 한다고 전한다. 구담봉 장회나루 쪽으로는 퇴계 선생을 사모하던 기녀 두향의 묘가 있으며,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주지번이 이곳에 낙향하여 칡넝쿨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연결하여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등 이야기가 많은 명승지이다. 구담봉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이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에 감싸여 있어 예로부터 이황, 이이, 김만중 등 수 많은 학자와 시인묵객이 그 절경을 극찬한 바 있으며, 지금도 충주호 수상관광의 최절경지로 꼽히는데

조선 명종 3(1548)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관기였던 18세의 두향은 첫눈에 퇴계에게 반했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퇴계는 시·서와 가야금에 능한 두향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9개월 후 이황이 풍기군수를 자청해 단양을 떠나게 되면서, 둘은 이별하게 되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라는 이황의 말에, 두향은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덧 술 다 하고 임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라는 시 한 수로 답했다. 퇴계가 떠난 뒤, 두향은 간청을 하여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와 자주 갔었던 강선대 옆에 움막을 짓고 오로지 퇴계 선생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하며, 그러던 중 퇴계의 죽음을 접한 두향은 “자신을 강선대 옆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기고 강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고 전하며
강선대 옆에 있던 두향의 묘가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험에 놓이자 퇴계의 후손들이 구담봉 장화나루 쪽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우리는 산행코스가 Y 형으로 되어 있어 하나는 옥순봉 하나는 구담봉이라 우리는 삼거리 길에서 구담봉으로 방향을 돌려서 산행을 하였다

바위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변이 호수와 산들이 병풍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바위들도 괴암괴석에 병풍으로 들어서 있었다

시야에는 옥순봉 정상도 구담봉 정상이 보였다

구담봉으로는 작은 정상에 3개가 보였다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3번 정도 해야 한다

모두가 바위를 타는 일이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가는 건 힘든데 가시면 후회는 없을 거란다

흔히들 산양이나 염소길이라고 하는 길이 있는데 험하다는 이야기로 여긴 더 하다

군에서 유격훈련하는거 못지 않을 정도로 8.90도의 경사를 3,40미터 올라야 한다

위험하다 힘이 떨어지고 숨이 차면 쉬어서 올라가기도 벅차다

쉬는 것도 어찌되었든 숨만 잠시 고르고 발 뒤딤 자리와 로프를 하나하나 잡아가며 올라야 한다

모두들 격려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올라서니 마당바위와 삐죽삐죽한 바위산이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가운데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구담봉 정상에서의 모습은 너무 통쾌하고 아름답고 예쁘며 바위가 아슬아슬한 곳에서 인증삿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끽하며 점심을 늦었지만 먹었다

간헐적으로 유람선이 호수를 오가는 모습과 음악소리가 함께하면서 물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바라다 보이는 옥순봉은 병풍처럼 걸쳐있는 바위모습이 별 모양을 다하고 있었다

바라다 보면 볼수록 연상이 다르게 되는 바위 병풍을 보면서 회장이 옥순봉도 이왕이면 들렸다 가 잔다 아까 오던 길은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하산하여 다시 옥순봉으로 오르자고 한다

내려가는 코스에 회장이 준비하여 온 로프를 몇 번 이용하여 내려오는 중에 마당바위가 있었다

음료수 남은 음식을 마시고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다

완전 하산하여 호수가로 유람선의 오가며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다시 산행시작이다

이제는 힘이 쪽 빠져 있었다

나의 체력을 아는지라 선두에서 거북이가 되는 쪽으로 아주 천천히 쉬어가면서 오르기 시작이다

완만한 곳에서는 선두를 그런대로 따라왔는데 힘이 들다

뒤에 오는 일행이 걱정이다

하지만 누구를 걱정할 틈도 없이 내가 뒤처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선두 5명중 나는 꼴찌다

뒤에 오는 친구들이 안 보인다

다행이다 아주 천천히 쉬엄쉬엄 선두를 따라 바위틈을 올라갔다

능선이 보인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힘이 겨워 힘든 표정을 억지로 참으며 정상에 올라 섰다

반대편에서 보았던 옥순봉 정상에서도 능선 두 개가 있었다

병풍처럼 된 곳은 좀더 가야하고 옥순대교가 보이는 곳으로 가서 인증샷을 하자 하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옥순봉 정상은 288미터였다

주변의 경관도 경관이지만 여기서 보는 구담봉은 역시 더 아름답게 보였다

단양8경 중 하나인 옥순봉은 제천10경 중 제8경이기도 하다. 옥순봉은 본래 제천(당시 청풍)에 속했다. 병풍처럼 두른 옥순봉의 기암괴석이 충주호를 둘러싼 모습이 무척 아름다우며 괴암괴석의 모습은 무엇으로 표현 못할 정도다  
이황은 관기 두향과 함께 지금의 옥순봉 아래 길을 따라 청풍으로 가던 중, 경치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어 이름을 물어보니 아무도 그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이황은 그 자리에서 ‘바위가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 하여 옥순봉(玉荀峯)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옥순봉의 절경에 반한 두향은 청풍부사를 만나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부사는 청풍땅을 단양에 내줄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이황은 돌아가는 길에 옥순봉 바위에 단양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으로 ‘단구동문(丹口洞門)’이라 새겼고, 이때부터 옥순봉은 단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요, 제천과 단양의 경계가 되었다고 한다.
후에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 알아보기 위해 옥순봉으로 가보니 힘차고 생동감 있는 글씨가 퇴계 이황의 것임을 알아보고 감탄해 옥순봉을 단양에게 내주었다고 전한다.

푸른 물은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 청풍에는 명월루가 있다.
선인은 어찌 기다리지 않고 섭섭하게 홀로 배만 돌아오는가 ~퇴계 이황 詩가 유명하고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이다.

우리 일행은 몇 개의 능선 중에 가까운 곳으로 능선을 타고 올라왔다

다시 말해서 옥순봉이 Y지점의 끝이기에 다시 2개의 정상을 가야 우리가 구담봉으로 갔던 갈림길이 나오기에 그 중의 한 능선을 타고 올라간 것이다

옥순대교를 배경으로 유람선과 사진을 남기고 친구들이 질러온 곳으로 가서 합류하여 모두가 낙오 없이 330미터를 등산하고 하산하여 288미터를 다시 마지막 정리를 하고 하산을 하니 저녁 530분이 조금 안되었다

쉽게 생각한 산행은 빡신 산행이었다

모두들 지쳐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기뻐하고 잘했다는 생각을 갖은것 같다

그렇다 힘든 것은 사람이 견딜 만큼 힘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이런데 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이 고장도 안 나고 빠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나이가 먹는 것이 이제는 덧없이 간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일 이든 나쁜 일이든 힘든 일 이든 멈추고 있다면 정말 상박 할 것이다

특히 나쁘고 힘든 일 때 세월이 안가고 멈추고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 조화 속에 나의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오늘 율면 월포 초등친구들 12명은 행복한 마음으로 장호원 쌀밥 집 뷔페에서 맛있는 만찬을 하고 돌아왔다

친구들 즐거웠다오 회장 총무 수고 많이 하셨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