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은 부드러운 산이다
청계산을 간다고 감곡면민회 카페에 공지가 되었다
2012년 새해 첫 산행이다 한국에 들어오면 산행을 함께한다
중국 촌놈이기에 길치고 산행도 많이 하지 않아 산이 있다는것만 알지 잘모른다
안숙 초등친구가 문자를 보내주어 장소를 다시한번 점검하고 카페를 들려 확인하니 10시에 청계산입구역에 집결하고 점심은 옛날순두부집으로 되어 있었다
청계산 입구역을 네비에 찍으니 업그래이드가 안되었는지 검색이 안된다
옛날순두부를 치니 검색이 되고 안내를 해준다
전화를 하여 산행출발지와 점심먹는 위치가 같으냐고 하니 같다고한다
차를 주차하고 기다리니 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하니 출발하였다고 한다 분명 출발지 다른곳인듯 했다
식당주인은 예약이 없다고 하고 좀 불안하여 전화를 확인하니 출발하면서 한다고하여 식당주인에게 하산시 들리겠다고 하고 나는 이수봉방향으로 등산을 하고 본진은 매봉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청계산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다
산을 오르면서 계단도 없이 줄곳 능선은 흙길로 너무 부드러웠다
어머니와 같은 산이라고 카페에 공지가 된것을 보았다
아래 사진을 보더라도 이해가 쉽게 될것이다
산행하기 좋은 흙이다
모두들 산행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무가지들이 진달래 들이다 저 정도면 고목이다
처음이고 하여 이수봉과 매봉을 알려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같이 가면된다고 한다 말동무 친구가 되어 같이 산행을 하였다
이수봉 정상 사진이다 안내해준 아주머니와 한장 남겼다
산 중간 중간에 노점 식당이 있었고 음료수와 오뎅 그리고 막걸리를 팔었다
중턱에서 오뎅과 막갈리 한잔을 하면서 자연과 한참을 어울렸다
박새와 접동새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땅콩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있으니 손에 올라와 앉아서 쪼아가는 모습에 너무 정다웠다
아마 저 새들이 사람들과 점점 더 가까워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올라가는 내내 매점이 있었고 땅콩 안주가 있었다
아마 손님이 없으면 땅콩 그릇으로 새들이 몰려들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수봉 쪽으로 오르는 곳에서는 노송과 갈참나무 신갈나무 숲이었다
그 사이 사이에 들어선 진달래나무는 너무도 많었으며 길에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온통 산에 진달래 나무가 빼곡하였으며 오래된 고목들로 가득했다
초봄에는 진달래 꽃이 온통산을 물들인듯한 모습이다
진달래 나무가 천지에 널려있다
저 굵기의 진달래면 몇수십년은 넘은 진달래 나무다
청계산은 어떤 산인가
검색을 해보니 자세하게 나온다 진작에 검색을 해볼걸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청계산은 높이 618 m이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석기봉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수봉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여 어머니산이라고 불릴정도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데다 서쪽 기슭에 서울대공원을 안고 있어 하이킹 코스로 찾고 있다. 정상인 망경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북쪽의 청계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으로 지난다.
청계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성남시ㆍ과천시ㆍ의왕시의 경계에 따라 위치해 있으며 과천에서 동남쪽으로 5km, 안양에서 동쪽으로 12km, 서울에서 18km의 거리를 두고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3.7㎢, 평수로 환산하면 112만평이고 매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경기도 청계산지역과 동쪽의 서울특별시 청계산지역으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산세는 서남쪽으로 의왕시에 소재한 백운산ㆍ모락산ㆍ오봉산으로 뻗쳐 있고, 서북쪽으로 과천시 옥녀봉 자락과 이어져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청계산은 국사봉(540m), 망경대(618m), 청계산(583m) 및 옥녀봉(375m)을 이어 남북으로 달리는 능선과 국사봉을 정점으로 하여 동서방향으로 달리는 능선이 만나 T자형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곡은 이와 같은 T자형 능선을 기점으로 하여 동서방향과 남쪽방향으로 능선이 어우러져 있다.
청계산 등산 안내동이다 산입구에 있었는데 발견을 못하고 이제야 보았다
옛골 자연부락의 모형으로 음식점들이 설명되어 있는데 내가 찾는 국보 두부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초구에서 청계산을 오르는 진입구는 4곳으로 청계골 입구, 원터골 입구,
개나리골 입구, 화물터미널 입구가 있습니다. 주 등산로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원터골입구에서 원터골 약수터를 거쳐 깔닥고개를 올라 매봉에 오르는 코스는 약 3km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옛골입구는 성남시 수정구 삼적동에서도 코스가 다양하다
성남 수정구 옛골코스 옛골마을→이수봉→헬기장→석기봉→만경대→매봉
본대가 출발한곳과 내가 있는 곳은 나중에 남쪽 끝과 북쪽 끝이었다
매봉으로 가는중에 헬기장이라고 한곳도 헬기장이 정상과 매봉에서 하산하는 지점에 헬기장이 두군데 있었다
청계산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짐작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과천읍지’(1899) 산천조에 청룡산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된다는 풍수설에 따라 청룡산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낙엽수가 세월만큼이 고목이 되어 있는 청계산은 겨울속에 낙엽이 진 상태다
도로 주변에 낙엽수가 고목이 되어 있었다
다만 청계산이란 이름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우선“청계”라는 이름이 붙고 그러한 내를 지닌 산이어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이 산의 주봉은 망경대(望京臺)에서 흐르는 물줄기 하나가 서쪽 막계동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것이 한자식 표기가 莫溪淸溪인 점으로 미루어 내 이름에 따라 붙여진 산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청계산은 淸溪山외에 淸鷄山ㆍ淸淸山 등으로도 나오지만 이는 기록한 이의 잘못이 아닌가 여겨진다.
청계산 북동쪽 기슭은 신사시대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로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고려 멸망 후 이색, 길재, 조윤 등 고려 유신들이 은거했던 곳으로, 청계산의 주봉을 망경대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가 망한 뒤 고려 유신 조윤이 청계산 정상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는 데서 유래하고 조선 말기에는 노년의 추사 김정희가 긴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부친의 여막을 지키면서 살았던 곳이다.
청계산의 모암은 호상흑운모편마암과 세립질편마암이 각각 약45%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우백질편마암, 화강암질편마암, 산성암맥 및 석회암이 국지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저지대의 경작지 인접지역에는 충적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모암의 특성상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깊이가 깊고 입자가 고운 갈색 산림토양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울특별시의 남쪽관문에 위치해 있어 서울로 상경하는 시민들에게 녹색의 푸르름을 안겨 도시의 삭막함을 절감시켜주며 연간 이용자수가 500여만명으로 휴일에는 6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어 도시지역에 대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고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서 애용되고 있는 산이다. 시민들이 많이 찾고 이용함으로써 청계산의 자연생태계를 점차 약화시키고 있어 입산통제구역,산불조심 기간 중 통제구역, 안전사고 위험지역 등 출입금지 구역에 대한 탐방객 스스로의 인식과 자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산을 처음온 나는 부드러운 길로 이수봉을 올라 정상에서 사진을 한장 남기고 석기봉을 오르니 여기가 정상 헬기장이다
이수봉에서 석기봉쪽으로 가는길에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었다
석기봉 오르기전 깔닥고개에 소나무가 청계산을 지키고 있었다
석기봉에서 이수봉이 멀리 보인다
정상인 만경대는 오르지 않고 매봉으로 향하였다
전화를 하니 하산중이라고 한다
헬기장이란다 내가 지나온 곳인가 하여 허겁지겁 다시 오르니 없다
다른 헬기장인듯 하다
나도 하산을 서두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산을 등산로가 아닌 차량이 오르내릴수 있는 도로로 내려왔다
계곡 골짜기를 돌고 돌아서 내려오니 거리는 더 멀었다
주차장에 돌아와 식당주인에게 식사도 못하고 나와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니 다음에 또 오세요 아주 친절하게 이해해주어 너무 고마웠다
청계산 입구역쪽으로 4키로 정도로 가니 굴다리가 나왔다
과감하게 들어가 고속도로옆으로 들어서서 2키로 정도가니 국보 두부마을이 보였다 이렇게 하여 극적인 상봉을 하였다
가서 보니 이해가 되었다
이쪽은 매봉으로 올라가 3~40명이 산행을 하니 장시간 산행을 할 수 없고 매봉 정상에서 간단하게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하산을 한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다른 헬기장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이수봉에서 석기봉으로 정상 헬기장에서 매봉으로 갔다가 하산하다 헬기장이라는 소리에 다시 석기봉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헤프닝으로 산행을 한것이다
빡시게 산행을 4시간동안 한것이다
감곡면민회 10기 선배님과 14기선배님을 비롯하여 선배님 후배님들 그리고 친구들 마지막 마무리 잘하고 회포를 풀고 2012년 1월 면민회 첫 산행 즐거웠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면민회원들과 인증삿을 하였디
나를 뺀 감중 20기들입니다 산악회 신회장님 마지막까지 수고 하셨습니다
감중 20기 22기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비빔밥은 일품이 었습니다
청계산에는 이런것들이 있다고 한다
망경대가 있다 청계산 정상에 있는 석대로 주위의 삼라만상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고려 충신 조견과 관련있는 이름이다. 망경대 정상에는 그 빛이 금빛 같다고 하여 이름지은 금정수라고 하는 샘도 있다. 또 혈읍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곳은 조견이 망경대 아래 마왕굴에 움막을 짓고 고려의 권토중래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고개로 매봉에서 마왕굴, 망경대, 청계사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이다.
수종폭포는 과천에서 바라볼 때 해뜨는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폭포라고도 하였다. ‘과천현신수읍지’에는 수종폭포가 수석이 맑고 깨끗하여 목욕하며 피서할 만한 곳이라고 적혀있는데 높이는 10m, 폭은 8m정도이고 폭포 아래에는 지름 약 7~8m, 깊이 1.5m정도의 못이 있다고 한다.
청계사가 있으며 청계사는 망경대 남서쪽 절고개 쪽(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산11번지)에 있고, 경내에는 석등과 부도편 일부가 신라 때일 것으로 추정되어 매우 이른 시기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크게 중창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은 후 조선 태종 7년(1407년) 조정에서 자복사로 지정하면서 천태종 소속 사찰로 귀속시켰고, 그 후 이조 시대를 통하여 조인규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중창을 거듭하였다도 한다.
이 절은 근세의 고승 경허의 입산지이고, 고려말과 조선 초의 문인들이 자주 묵어갔던 절이기도 하다고 하며.
천개사는 망경대 북동쪽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서 서울시 서초구 원지동 441번지에 위치 하고, 1969년 5월에 창건하여 1995년 5월에 대웅전을 중건한 부지면적 8,250㎡ 규모의 비 구니 사찰로서 조계종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륵당은 원지동에서 청계산 원터골 등산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굴다리 입구 오른편에 있는 2m정도의 백색 입상인 미륵불이 모셔져있는데 원터마을의 수호신으로 1년에 한번씩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세계 > 한국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담봉과 옥순봉 (0) | 2013.03.16 |
---|---|
박효석선생님과 함께 (0) | 2013.03.13 |
제주도의 자연 세번째 (0) | 2011.09.08 |
제주도의 자연 두번째 (0) | 2011.09.08 |
제주도의 자연 첫번째 (0) | 201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