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행 하던 날
일시 :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장소 : 북경 평곡 홍석문촌에서 고장성을 타고 삼계비를 올라 천진 계현 감로산입구로 하산
주최 : 천진 산 사랑 회
모두들 간단한 결정을 그렇게 심사숙고 해서야 무슨 일을 할까
라고 반문 할 수도 있으리라
교통사고 후 약해진 몸을 위하여
조금 회복된 후유증을 위해 운동을 하려고 만보기를 사서
조금씩 걷고 또 걷고 더 걷고 하면서
골프를 욕심 내여 골프도 주말에 하였다
다음주도 또 그 다음주도 골프를 하면서 목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을 했다
산을 가보자 카페를 가입하고 산행 갔다 온 사진을 보면서
망설이고 망설이기를 몇 주 하였는데
토요일 저녁에 퀸에 들였다가 산악회 부회장을 만났고
카페에서 보니 총무가 향우회 사람이고 몇 명은 아는 사람이 있었다
밤 10시에서야 내일 산에 간다고 결정을 하고
카페에 산에 간다고 리 풀 달아 놓은 시간이 꽤 오래된 11시 30분 정도니
그 시간에 총무나 다른 사람이 안 볼 수도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으려 하니
새 신에 다가 처음 신어보는 등산화라
무겁고 둔탁한 것이 어줍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집 대문을 나오면서 해낼 수 있을 거야 하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걱정이 먼저 앞선다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이 온천호텔 좀 빨리 왔기에 호텔에 앉자 있다가 나가보니
웅기 종기 모여든 최형길 산악회장과 산악회원들 속에
향우회원인 총무와 서정우씨가 보였고
저녁에 만났던 정만영부회장이 보였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였던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쩌지 혹시 낙오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34인승 진우 고속 버스는 출발 하였다
산악회 임원소개가 있었고 새로 온 사람들 개별소개를 하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개를 하고 나서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보니
한국사람이 아님 중국사람이었다 잘 안 되는 말로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
중국 WTO관련 하여 일을 하고 있고 군대 중령이라고 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듯 계현을 지나 북경 평곡구를 도달하여 구정부쪽이 아닌 왼쪽으로 산을 따라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오늘 가는 곳은 홍석문촌쪽에서 장성을 타고 오르면 3시간 반을 오르는 코스가 백두조요
다른 하나는 홍석문촌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 장성을 타고 2시간 오르는 코스가 한라조다
죽으나 사나 올라야 정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돌아가서 버스에서 기다렸다가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만나서 버스를 타고 되돌아 와야 한다
버스는 백두조가 오르는 삼거리에 정차를 하고 기념촬영과 산행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고
단체사진을 찍고나니

산행을 시작 한다 중국친구가 백두조를 가자고 강력하게 추천하는데 거절도 못하고
따라 나서는데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도 생겼다
버스는 한라조를 태우고 출발하였다
정확하게 31명중 16명이 백두조로 오르고 15명은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제는 돌아갈 차도 없고 오로지 정상을 향하여 올라야 한다
아스팔트 길을 조금 오르다 밭을 가로 질러서 오솔길처럼 나있는 길 이제부터 산을 올라야 한다
5분도 채 안되어 숨이 가쁘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다
산등성이며 장성이 있는 곳 까지 10여분 정도 안 되는 곳에 당도하니 아래가 보였고 멀리 정상 같은 곳이
보이는 것이 한참을 올려다 보이는 것이 아찔하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려고 안간힘을 다해 보지만 쉽게 숨은 고르려는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더 헐떡이게 되고 입안은 침 한 방울 없는 것처럼 타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 보자 저 위에 보이는 정상이야 못 가겠는가
사력을 다하면 무엇인들 못하랴
오르고는 있는데 아직도 먼 정상에 힘이 빠졌지만 조금씩 가보자

장성을 타면서 옆 눈 질을 하면서 멀리 보이거나 아니면 가까이에 있는 벗 꽃 들이 만발하여 갈색의 산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봄기운이 오르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은 4월 중순은 이른 봄을 느끼기에는 충분 했다
갈색에서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았으리라
갈색이 은빛 같기도 하고 회색 빛 같기도 한
나무들과 낙엽 진 풀잎까지도 황홀하다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잎사귀 없는 꽃잎이 만발한 벗 꽃들이 벗들을 부른다
손짓하고 손짓하는 새 봄에 저 산 위를 올라
그들과 대화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 잔다
자연의 봄을 느끼며 오르는 산행은
기쁘기만 하여야 하는데 긴장으로 가득하다
그래 기쁨을 느끼기에는 저 산을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동화 시켜야 한다
우격다짐으로 나를 다스린다면 결코 안되리라
천천히 먼저간 동료들에게는 미안 하지만
조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발 한 발 오르자
다짐하고 다짐해보지만 숨이 너무 가쁘다
사력을 다해보자 정상을 보지말고 그냥 오르고 또 올라가보자

숨이 차서 이제는 꼴딱 넘어 갈듯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지면 안된다 오기로 오르자 어느 듯 저 아래서 보았든 정상이 가까워 지는 듯 한데 뒤편으로 다시 선두 조가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더 가빠지고 견딜 수 없는 통증과 목이 타옴을 느꼈다
저 정상 같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저 정상도 아니고 어느 정상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가자니 끝이 안보이니 사면초가다
산꼬대기에 오르니 시야가 보인다 저곳이다 저곳을 가려면 아마 시간 반은 더 올라야 할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하는 오름세의 장성 등선은 가히 길고도 험해 보였다
뒤를보니 오기도 많이 왔는데 아직도 온만큼 가야한다 더가파른곳을...

잘 다듬어진 장성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지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삐그덕 잘못하면 5~6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뒤 을 돌아보니 중국 중령 친구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그 뒤에 최형길 산악회장과 그리고 신영호 총무가 따라오면서 무전기를 교신하고 있었다
앞에는 중국아가씨 2명과 그 앞으로 선두 조가 가고 있었는데 그 거리가 족히 1키로는 될 듯 싶다
내려갈 때는 다소 숨을 고를 수가 있어서 다행인데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기로 추락이다
다행히 스틱을 가지고 와서 짚어 가면서 내려오고 오를 때는 숨이 차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백두조 일부가 올라 가있고 한라조가 정상에 올라 있었다
정상에는 시끌뻑쩍찌근한 소리가 들렸고 산울림소리 야~~~~~~~~호~~~~~~가 들렸다
우리인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정상에 있는 듯 하다
나도 태연한척 돌아서서 야~~~~~호를 해보지만 숨이 차서 소리도 안나온다
여하튼 정상에 오르는 등선은 장성의 길은 아니고 그 옆으로 난 산행 길 .......
저 위만 오르면 된다 하지만 발은 천근 만근이다
숨도 숨이지만 발도 이제는 떨어지지 않는다
200미터도 남지 않은 저 정상
45도 각도를 오르려는 내 몸은
쉽게 이길 것 같지가 않다
10발짝도 못 가서 한참을 쉬고
한발을 어렵게 올려서 옴 기고
숨소리는 심장이 터질듯하며
입안의 갈증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정만영 부회장이 이제 다 왔습니다
몇 발짝만 오르면 됩니다 加~油 화이팅 한다
마지막 정상전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야 하는데 발이........

몇 발짝 남지 않은 저 정상
몇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북경 무슨 신문에서 온 등산객 들이었다 콰~이 도울라 짜~요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는 중국어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쎄쎄 짜이찌앤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내입에서 나오긴 하는데 숨소리가 심상찮다
10미터도 남지 않은 정상이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다
정상아래는 기둥을 세우고 천장은 양철로 바람막이처럼 해 놓은 것이 쉼터로는 제격이었다
이리로 오세요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쉬죠 하는 정부회장 소리가 들렸다
눈으로 세어 보니 10계단 정도되는 계단 위에 삼각형 비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계단에 주저앉고 싶다
호흡을 가다듬고 온 힘을 다해 여~~덜 아~~~홉 열~~~
휴~~~~~ 신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다
다 왔다 휘청거리는 다리와 터질듯한 심장의 고동소리
기쁨을 맞보기에는 먼저 추스르는 수밖에 없다
잠시 숨을 고르며 몸을 추스르는데 먼저 온 최회장,강춘용중국인,그리고 같이 온 중국아가씨 2명을 위해 정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처음 온 나를 위해 정상에서 감격을 같이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나는 백두조를 가게한 중국인 강춘용씨와 신입회원소개

나로서는 나의 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산행을 결정 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민폐 끼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30분 정도 늦었지만 거북이가 되어 정상에 오르는 쾌감을 맞볼 수 있었다 오른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안타깝고 힘들게 느꼈으리라
북경과 천진 그리고 하북성이 같이 하는 삼계비 정상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동료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배낭 속에서 도시락과 무우 말랭이 반찬을 꺼내어 놓고 중국인 3명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물론 다른 분들이 가지고 온 김밥과 도시락 김치,총각김치 등을 먹으면서 꿀맛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하고 정상에서 기념촬영과 신입회원들 소개를 다시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삼계비정상에서 단체사진

하산하는 길에는 장성을 다시 내려가고 오르는 것을 한두 번 하고는 계곡 깊은 곳의 마을로 내려가는 코스인데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산등성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데 동료들과 대화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장성은 길고도 길었다 올라오면서도 더욱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내려오는데도 길다는 생각을 했다
홍석문촌이라는 입간판과 홍석문촌의 유래를 간판에서 본적이 있는데 번역을 못하여 나중에 동료를 통하여 해석을 해보니 다음과 같다
< 홍석문 소개>

홍석문은 북경시, 천진시, 하북성 3개 지역의 교차 부분으로서 부지 8,600무
( 1무 = 666.7 m), 인구 246명이며 전설에 의하면 이랑신(신선)이 물지게로
(주, 여기서 지게는 막대기 양끝에 물 양동이를 두개를 매단 형태) 산에 메고 가다가 부주의로 넘어 졌었는데 이랑신의 손바닥이 홍석문 지역에 닿아 15갈래 골짜기와 6개 계곡, 평지 하나가 나타났다. 이랑신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 5 KM 돌산을 붉은 바다로 물들였다
북송(송나라)시기 북송의 무구이잉이라는 여자 장군과 요나라가 전쟁시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붉은색 바위들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이때 여장군이
칼을 휘둘러 바위를 두 조각으로 갈라 놓았다.
후세 사람들이 부분 공사를 하여 현재 대문과 흡사한 붉은색 벼랑으로 변했다. 또한 홍석문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이한 전설이야기, 독특한 자연환경은 홍석문 으로 하여금 북경, 천진,
하북성 3개 지역을 걸친 명승지로 부상하게 하였다.
홍석문의 소나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3개 지역 비석을 볼 수 있을 뿐더러
만리 장성의 부분 경치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고장성을 올랐고 하산도 성을 타고 내려왔다

산 이름은 아직 파악이 안되었다 산골짜기에 군데군데 집이 있었고 사는 모습들이 단촐 하고 나름대로 과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호도나무와 배나무 등 유실수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매실인듯하게 보이는 과일나무는
산 정상 골짜기까지 심어져 있었다
땅을 깊이 파고 그 밑에 동굴처럼 해놓고 그 안에 과일이나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를 해놓은 것을 보면 과학적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마을이 더 컸고 감로산 입구(甘露山 入口)라고 써 있었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감로산인가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라간 삼계비가(三界碑) 있는 산 이름은 무슨 산일까
감로산입구 간판문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내려오면서 보니 동내가 제법 커 보였다
차가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마을이기는 하지만 워낙 산골짜기라 몇 집 없을 듯 하였는데
마을이 크고 나름대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는 모습들이었다
버스가 있는 곳에 당도하니 3시30분이 넘었다
9시30분에 오르기 시작 했으니 식사시간 1시간 정도 빼더라도 5시간 정도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한 셈이다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7살 정도 어린아이가 있어 혹시 산에서 먹으려던 과자를 주니 받아서 먹으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니 행복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고향 생각이 난다 아주 산골은 아니었지만 농사를 지으려면 거의 지게로 져야 했던 산골 논밭이 많았다
그때 어린 시절이 생각이나고 50중반을 넘고 보니 더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이다
모두들 하산하고 인원파악을 해보니 전원 낙오 없이 내려와 차에 오르니 온몸이 쑤시고 다리가 뻑적지근하고 처음 신는 등산화 속의 발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이쪽은 북경이 아니다 천진 계현으로서 감로산 고장성을 탄 기분이 힘들고 퍼질 지경이다
등산화를 벋고 수건을 버스바닥에 깔고 양 발 바닥으로 걸 터서 의자에 앉자 오는 동안 곰곰 히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정상에 오를 때 발이 떨어지지 않아
이놈에 발을 배낭에 메고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 다음주에 또 와야지 또 와야지 내 체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산행이 최고야 !!!!!!!!!!
숨이 넘어 갈듯한 호흡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터지더라도 다음주에 또 와야지
하는 생각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첫 산행의 통쾌함을 느껴본다
다음주에 또 산에 가야지 !!!!!
출처 : 중국삼성오비회
메모 :
첫 산행 하던 날
일시 :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장소 : 북경 평곡 홍석문촌에서 고장성을 타고 삼계비를 올라 천진 계현 감로산입구로 하산
주최 : 천진 산 사랑 회
모두들 간단한 결정을 그렇게 심사숙고 해서야 무슨 일을 할까 라고 반문 할 수도 있으리라 교통사고 후 약해진 몸을 위하여 조금 회복된 후유증을 위해 운동을 하려고 만보기를 사서 조금씩 걷고 또 걷고 더 걷고 하면서 골프를 욕심 내여 골프도 주말에 하였다 다음주도 또 그 다음주도 골프를 하면서 목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을 했다 산을 가보자 카페를 가입하고 산행 갔다 온 사진을 보면서 망설이고 망설이기를 몇 주 하였는데 토요일 저녁에 퀸에 들였다가 산악회 부회장을 만났고 카페에서 보니 총무가 향우회 사람이고 몇 명은 아는 사람이 있었다 밤 10시에서야 내일 산에 간다고 결정을 하고
카페에 산에 간다고 리 풀 달아 놓은 시간이 꽤 오래된 11시 30분 정도니 그 시간에 총무나 다른 사람이 안 볼 수도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으려 하니
새 신에 다가 처음 신어보는 등산화라 무겁고 둔탁한 것이 어줍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집 대문을 나오면서 해낼 수 있을 거야 하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걱정이 먼저 앞선다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이 온천호텔 좀 빨리 왔기에 호텔에 앉자 있다가 나가보니 웅기 종기 모여든 최형길 산악회장과 산악회원들 속에
향우회원인 총무와 서정우씨가 보였고 저녁에 만났던 정만영부회장이 보였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였던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쩌지 혹시 낙오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34인승 진우 고속 버스는 출발 하였다 산악회 임원소개가 있었고 새로 온 사람들 개별소개를 하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개를 하고 나서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보니 한국사람이 아님 중국사람이었다 잘 안 되는 말로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 중국 WTO관련 하여 일을 하고 있고 군대 중령이라고 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듯 계현을 지나 북경 평곡구를 도달하여 구정부쪽이 아닌 왼쪽으로 산을 따라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오늘 가는 곳은 홍석문촌쪽에서 장성을 타고 오르면 3시간 반을 오르는 코스가 백두조요 다른 하나는 홍석문촌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 장성을 타고 2시간 오르는 코스가 한라조다 죽으나 사나 올라야 정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돌아가서 버스에서 기다렸다가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만나서 버스를 타고 되돌아 와야 한다 버스는 백두조가 오르는 삼거리에 정차를 하고 기념촬영과 산행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고
단체사진을 찍고나니

산행을 시작 한다 중국친구가 백두조를 가자고 강력하게 추천하는데 거절도 못하고 따라 나서는데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도 생겼다 버스는 한라조를 태우고 출발하였다 정확하게 31명중 16명이 백두조로 오르고 15명은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제는 돌아갈 차도 없고 오로지 정상을 향하여 올라야 한다 아스팔트 길을 조금 오르다 밭을 가로 질러서 오솔길처럼 나있는 길 이제부터 산을 올라야 한다 5분도 채 안되어 숨이 가쁘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다 산등성이며 장성이 있는 곳 까지 10여분 정도 안 되는 곳에 당도하니 아래가 보였고 멀리 정상 같은 곳이 보이는 것이 한참을 올려다 보이는 것이 아찔하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려고 안간힘을 다해 보지만 쉽게 숨은 고르려는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더 헐떡이게 되고 입안은 침 한 방울 없는 것처럼 타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 보자 저 위에 보이는 정상이야 못 가겠는가 사력을 다하면 무엇인들 못하랴
오르고는 있는데 아직도 먼 정상에 힘이 빠졌지만 조금씩 가보자

장성을 타면서 옆 눈 질을 하면서 멀리 보이거나 아니면 가까이에 있는 벗 꽃 들이 만발하여 갈색의 산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봄기운이 오르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은 4월 중순은 이른 봄을 느끼기에는 충분 했다
갈색에서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았으리라 갈색이 은빛 같기도 하고 회색 빛 같기도 한 나무들과 낙엽 진 풀잎까지도 황홀하다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잎사귀 없는 꽃잎이 만발한 벗 꽃들이 벗들을 부른다 손짓하고 손짓하는 새 봄에 저 산 위를 올라 그들과 대화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 잔다
자연의 봄을 느끼며 오르는 산행은
기쁘기만 하여야 하는데 긴장으로 가득하다 그래 기쁨을 느끼기에는 저 산을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동화 시켜야 한다 우격다짐으로 나를 다스린다면 결코 안되리라 천천히 먼저간 동료들에게는 미안 하지만 조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발 한 발 오르자 다짐하고 다짐해보지만 숨이 너무 가쁘다
사력을 다해보자 정상을 보지말고 그냥 오르고 또 올라가보자
 숨이 차서 이제는 꼴딱 넘어 갈듯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지면 안된다 오기로 오르자 어느 듯 저 아래서 보았든 정상이 가까워 지는 듯 한데 뒤편으로 다시 선두 조가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더 가빠지고 견딜 수 없는 통증과 목이 타옴을 느꼈다 저 정상 같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저 정상도 아니고 어느 정상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가자니 끝이 안보이니 사면초가다 산꼬대기에 오르니 시야가 보인다 저곳이다 저곳을 가려면 아마 시간 반은 더 올라야 할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하는 오름세의 장성 등선은 가히 길고도 험해 보였다
뒤를보니 오기도 많이 왔는데 아직도 온만큼 가야한다 더가파른곳을...
 잘 다듬어진 장성도 아니요 그렇다고 어지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삐그덕 잘못하면 5~6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뒤 을 돌아보니 중국 중령 친구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그 뒤에 최형길 산악회장과 그리고 신영호 총무가 따라오면서 무전기를 교신하고 있었다 앞에는 중국아가씨 2명과 그 앞으로 선두 조가 가고 있었는데 그 거리가 족히 1키로는 될 듯 싶다 내려갈 때는 다소 숨을 고를 수가 있어서 다행인데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기로 추락이다 다행히 스틱을 가지고 와서 짚어 가면서 내려오고 오를 때는 숨이 차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백두조 일부가 올라 가있고 한라조가 정상에 올라 있었다 정상에는 시끌뻑쩍찌근한 소리가 들렸고 산울림소리 야~~~~~~~~호~~~~~~가 들렸다 우리인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정상에 있는 듯 하다
나도 태연한척 돌아서서 야~~~~~호를 해보지만 숨이 차서 소리도 안나온다
여하튼 정상에 오르는 등선은 장성의 길은 아니고 그 옆으로 난 산행 길 ....... 저 위만 오르면 된다 하지만 발은 천근 만근이다 숨도 숨이지만 발도 이제는 떨어지지 않는다
200미터도 남지 않은 저 정상 45도 각도를 오르려는 내 몸은 쉽게 이길 것 같지가 않다 10발짝도 못 가서 한참을 쉬고 한발을 어렵게 올려서 옴 기고 숨소리는 심장이 터질듯하며 입안의 갈증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정만영 부회장이 이제 다 왔습니다 몇 발짝만 오르면 됩니다 加~油 화이팅 한다
마지막 정상전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야 하는데 발이........
 몇 발짝 남지 않은 저 정상 몇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북경 무슨 신문에서 온 등산객 들이었다 콰~이 도울라 짜~요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는 중국어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쎄쎄 짜이찌앤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내입에서 나오긴 하는데 숨소리가 심상찮다 10미터도 남지 않은 정상이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다
정상아래는 기둥을 세우고 천장은 양철로 바람막이처럼 해 놓은 것이 쉼터로는 제격이었다 이리로 오세요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쉬죠 하는 정부회장 소리가 들렸다 눈으로 세어 보니 10계단 정도되는 계단 위에 삼각형 비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계단에 주저앉고 싶다 호흡을 가다듬고 온 힘을 다해 여~~덜 아~~~홉 열~~~ 휴~~~~~ 신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다
다 왔다 휘청거리는 다리와 터질듯한 심장의 고동소리
기쁨을 맞보기에는 먼저 추스르는 수밖에 없다 잠시 숨을 고르며 몸을 추스르는데 먼저 온 최회장,강춘용중국인,그리고 같이 온 중국아가씨 2명을 위해 정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처음 온 나를 위해 정상에서 감격을 같이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나는 백두조를 가게한 중국인 강춘용씨와 신입회원소개

나로서는 나의 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산행을 결정 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민폐 끼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30분 정도 늦었지만 거북이가 되어 정상에 오르는 쾌감을 맞볼 수 있었다 오른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안타깝고 힘들게 느꼈으리라 북경과 천진 그리고 하북성이 같이 하는 삼계비 정상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동료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배낭 속에서 도시락과 무우 말랭이 반찬을 꺼내어 놓고 중국인 3명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물론 다른 분들이 가지고 온 김밥과 도시락 김치,총각김치 등을 먹으면서 꿀맛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하고 정상에서 기념촬영과 신입회원들 소개를 다시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삼계비정상에서 단체사진

하산하는 길에는 장성을 다시 내려가고 오르는 것을 한두 번 하고는 계곡 깊은 곳의 마을로 내려가는 코스인데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산등성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데 동료들과 대화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장성은 길고도 길었다 올라오면서도 더욱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내려오는데도 길다는 생각을 했다 홍석문촌이라는 입간판과 홍석문촌의 유래를 간판에서 본적이 있는데 번역을 못하여 나중에 동료를 통하여 해석을 해보니 다음과 같다
< 홍석문 소개>
 홍석문은 북경시, 천진시, 하북성 3개 지역의 교차 부분으로서 부지 8,600무 ( 1무 = 666.7 m), 인구 246명이며 전설에 의하면 이랑신(신선)이 물지게로 (주, 여기서 지게는 막대기 양끝에 물 양동이를 두개를 매단 형태) 산에 메고 가다가 부주의로 넘어 졌었는데 이랑신의 손바닥이 홍석문 지역에 닿아 15갈래 골짜기와 6개 계곡, 평지 하나가 나타났다. 이랑신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 5 KM 돌산을 붉은 바다로 물들였다
북송(송나라)시기 북송의 무구이잉이라는 여자 장군과 요나라가 전쟁시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붉은색 바위들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이때 여장군이 칼을 휘둘러 바위를 두 조각으로 갈라 놓았다.
후세 사람들이 부분 공사를 하여 현재 대문과 흡사한 붉은색 벼랑으로 변했다. 또한 홍석문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이한 전설이야기, 독특한 자연환경은 홍석문 으로 하여금 북경, 천진, 하북성 3개 지역을 걸친 명승지로 부상하게 하였다.
홍석문의 소나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3개 지역 비석을 볼 수 있을 뿐더러 만리 장성의 부분 경치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고장성을 올랐고 하산도 성을 타고 내려왔다

산 이름은 아직 파악이 안되었다 산골짜기에 군데군데 집이 있었고 사는 모습들이 단촐 하고 나름대로 과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호도나무와 배나무 등 유실수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매실인듯하게 보이는 과일나무는 산 정상 골짜기까지 심어져 있었다 땅을 깊이 파고 그 밑에 동굴처럼 해놓고 그 안에 과일이나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를 해놓은 것을 보면 과학적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마을이 더 컸고 감로산 입구(甘露山 入口)라고 써 있었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감로산인가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라간 삼계비가(三界碑) 있는 산 이름은 무슨 산일까 감로산입구 간판문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내려오면서 보니 동내가 제법 커 보였다 차가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마을이기는 하지만 워낙 산골짜기라 몇 집 없을 듯 하였는데 마을이 크고 나름대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는 모습들이었다 버스가 있는 곳에 당도하니 3시30분이 넘었다 9시30분에 오르기 시작 했으니 식사시간 1시간 정도 빼더라도 5시간 정도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한 셈이다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7살 정도 어린아이가 있어 혹시 산에서 먹으려던 과자를 주니 받아서 먹으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니 행복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고향 생각이 난다 아주 산골은 아니었지만 농사를 지으려면 거의 지게로 져야 했던 산골 논밭이 많았다 그때 어린 시절이 생각이나고 50중반을 넘고 보니 더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이다 모두들 하산하고 인원파악을 해보니 전원 낙오 없이 내려와 차에 오르니 온몸이 쑤시고 다리가 뻑적지근하고 처음 신는 등산화 속의 발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이쪽은 북경이 아니다 천진 계현으로서 감로산 고장성을 탄 기분이 힘들고 퍼질 지경이다 등산화를 벋고 수건을 버스바닥에 깔고 양 발 바닥으로 걸 터서 의자에 앉자 오는 동안 곰곰 히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정상에 오를 때 발이 떨어지지 않아 이놈에 발을 배낭에 메고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 다음주에 또 와야지 또 와야지 내 체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산행이 최고야 !!!!!!!!!! 숨이 넘어 갈듯한 호흡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터지더라도 다음주에 또 와야지 하는 생각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첫 산행의 통쾌함을 느껴본다
다음주에 또 산에 가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