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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북공정은 고조선 침탈음모"

泉玟 김동석 2006. 9. 28. 06:35
동북공정은 고조선 침탈음모"
남의 역사라도 빼앗아 자국민 자부심 심어주려는 의도
 
조옥구 칼럼니스트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彊史地硏究中心)이 9월 초부터 연구결과를 공개함에 따라 지난 2003년 발표했던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의 의도가 단지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우리 고조선에까지 미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은 지난 2003년 변방사 정리라는 명분아래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발표한바 있다.
 
당시 이 발표를 접한 우리 국민들은 ‘노골적인 고구려사의 침탈 음모’라며 일제히 규탄하고 나섰고 우리 정부 역시 문제해결을 위해 중국정부와 정부간 채널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전하는 한편 ‘고구려사 문제에 관하여 정치쟁점화 하지 않고 민간 차원의 학술 토론으로 풀어간다’는 모호한 ‘양해각서’를 작성함으로써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우리 정부는 ‘양해각서’라는 외교문서도 작성한 터라 순진하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방심한 사이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양해각서와는 관계없이 역사침탈음모를 음으로 치밀하게 추진해 왔음이 금번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연구결과 발표에 따라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돌이켜보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발표하기 이미 8년 전인 1995년부터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이 치우천황의 전승지인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을 꾸미고 그 중심에 삼조당(三祖堂)을 지어 우리 배달국의 14대 천황인 치우천황(자오지천황)과 배척하기조차 했던 염제(炎帝)까지 자기네 시조의 한분으로 모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은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던 그들이이렇게 일변한 데에는 정부의 조직적인 의도가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북경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차량을 달려 한나절이나 떨어진 외진 곳 탁록에 많은 예산을 들여 ‘귀근원’을 꾸미고 ‘삼조당’을 지은 것 역시 거대한 음모의 포석에 다름아니었다. 숨겨진 의도가 없다면 그리고 조직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자기 시조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아무 거리낌 없이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당시 이런 변화를 직접 확인한 우리 답사단은 이미 중화의 음모가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힘없는 몇몇 국민들 뿐 영향력 있는 학계나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막상 2003년에 소위 ‘동북공정’이 발표되자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우리 정부와 학계는 떡집에 불이나 난 양 부산을 떨면서 ‘고구려사 침탈’이라고 목에 힘을 주더니 결국 하는 일이란 예산을 확보해 고구려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응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동북공정’의 드러난 목표가 ‘고구려사 침탈’에 있다고 해서 ‘고구려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떠드는 얕은 식견도 문제이지만 광복 이후 60여 년 동안 우리 학계는 ‘고구려사’ 하나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고 무얼 했으며 또 못한 이유가 돈이 없어서인가?
 
100억의 예산을 책정하여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한 일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면 이건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적의 칼날이 우리의 뿌리를 향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한가하게 어떤 무기를 구입해야할지 몰라 허둥댄다면 이 싸움은 이미 결론이 자명하다.
 
그러나 매사는 늦었다고 할 때가 오히려 기회가 되는 법이다. 다시금 정리하거니와 2003년 발표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단순히 변방사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탐원공정(探原工程)’의 한 부분으로,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여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세계 문명이 황하문명에서 시작되었고 황화문명의 주인공이 화하족 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것은 화하족의 민족적 자부심 바로 그것이다. 화하족이야말로 세계 4대문명의 으뜸인 화하족의 주인공으로 인류사상 문명을 이룩한 최초의 종족으로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 것이 소위 ‘탐원공정’의 의도다.
 
남의 역사라도 빼앗아 자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한편 가상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주에는 법도가 있고 세상에는 진리가 있는 법인데 남의 역사를 남의 조상을 빼앗아 간다고 빼앗을 수 있는 것이며 또 거짓과 행패로 무슨 자부심이 얻어지겠는가?
 
참으로 치기어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니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동북공정’에 직면하여 충무공의 업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바로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비록 화하족이 장악한 유적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가문의 족보와 같은 역사는 간직하고 있다. 역사는 혼이다. 혼을 잃지 않으면 영토는 언제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토전쟁을 벌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뿌리에 대한 신념과 우수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자손 대대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우리의 역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정부나 학계가 우선해야 될 일은 우리에게 우리 역사에 관하여 무엇이 남아있는가를 뒤돌아보는 일이다.
 
일각에서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지적하는 것들에 대해서 귀담아 들어야 하고 우리의 뿌리를 밝히는 자료에 대해서도 닫힌 귀를 열고 경청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사관 하나 정립하지 못하면서도 어떤 사료는 소중하고 어떤 사료는 안된다는 식으로 편견을 가질 일이 아니라 아무런 선입견 없이 우리 역사를 드러난 사료에 입각해서 바로 보는 것이다.
 
한 예로, 역사학계의 원로 한사람이 ‘우리나라 청동기의 상한 연대 bc10세기’라고 주장하고 나서자 그 제자들은 어떤 사료가 나와도 bc10세기 이전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풍토가 우리 사학계의 현실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우리나라 청동기의 상한 연대를 bc14세기로 못 박고 있지만 이미 중원대륙에는 bc30세기 이전의 것으로 언급되는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고 중원의 고대사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으므로 상호 비교연구를 통하여 아시아의 역사를 정립하는데도 기여해야 한다.
 
‘동북공정’은 어떤 면에서 우리 민족의 각성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소흘히 여긴 우리의 뿌리에 대한 관심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학자들은 차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역사의 자락들을 찾아 미래지향적인 사관에 입각하여 우리 민족사를 완성해야 하며 정부는 역사를 왜곡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여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단연코 극복의 의지가 분명함을 천명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역사의 줄거리를 세우고 이를 입증할 완벽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면 중국은 ‘동북공정’ 같은 어설픈 계획을 수립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계의 고조선에 관한 연구는 정말 보잘 것이 없다. 국내 역사학계 스스로 우리 역사는 고구려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중국이 ‘고조선도 중국 고대사의 한 나라’라고 주장해버리면 우리로서는 논리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궁색해진다.
 
우리 학계가 외국의 도전을 받아서라도 빨리 우리 역사를 바른 눈으로 바라보고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 중국이 발표한 연구과제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삼국사기 상세 주석 및 연구
 2. 발해 이민의 통치와 귀속연구
 3. 민국시기 동북지방 정부의 변경통치 연구
 4. 중-한 관련 성씨(姓氏)의 기원 고찰
 5. 근대 중국 동북지역의 국제이민문제
 6. 역대왕조의 동북변경통치 연구
 7. 동북 한족 인구연구과제
 8. 발해사론
 9. 광개토왕비
10. 중국동북 고(古) 민족발전사
11. 러시아 동부이민개발문제
12. 발해국사
13. 기자 및 기자조선연구
14. 20세기 중국동북변경문화연구과제
15. 중국동북과 러시아 경제관계사
16. 흑룡강성통사
17. 청대 압록강 유역의 봉쇄와 개발연구
18. 국제법과 중․조변경논쟁
**왜곡 사례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 영토는 한반도 한강 유역의 진번(眞番)조선까지 확대됐다.
-한강 유역까지 모두 고대 중국의 역사고 중국의 영토다.
-발해는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唐)에 귀속된 일개 지방정권으로 ‘말갈’을 정식 국호로 사용한 말갈족의 국가였다‘.
-기자조선은 중국의 은(殷)·상(商)왕조 후예들이 한반도에 건립한 지방정권으로, 주(周)와 진(秦)의 해외 속국
-기자조선이 한반도지역에서의 중국 동북사의 시작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공격은 “당이 고구려를 정벌한 통일전쟁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

 
明知大學校  民族史콘텐츠學科  趙玉九 교수 (칼럼니스트)
 
기동취재와 사회부에서 일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6/09/26 [12:35] ⓒ 이조은뉴스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한류황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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