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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구려역사 말살 현장을 가다…흔적 지우기 안간힘

泉玟 김동석 2006. 9. 28. 06:54

고구려역사 말살 현장을 가다…흔적 지우기 안간힘 
 
[쿠키뉴스 2006-09-08 11:35]   
 

중국이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 동북지역의 일개 지방민족 정권으로 폄훼시키는 역사공정에는 한반도 통일 이후 불거질 수 있는 간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가 비쳐진다. 

간도의 범위는 여러 설이 있다. 좁게는 두만강과 압록강의 사이 섬을 일컬었지만, 조선 말엽~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이주가 늘면서 그 범위가 북방으로 확대됐다. 이곳은 바로 옛 고구려, 발해의 영토이기도 하다. 

간도는 또 서간도와 동간도, 북간도로 나뉜다. 서간도는 백두산 서편, 즉 압록강 건너편과 랴오닝(遼寧)성 봉성시 부근 봉황성 주변까지 변경지역이다 동간도는 백두산과 쑹화강 상류지역의 서부지역과, 두만강 인접 지역의 동부로 구분되는데 이 동부지역을 흔히 북간도라고 부른다. 중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북간도지역이며, 지금의 옌볜조선족자치주 일대다. 옌볜(延邊)은 옛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로 돈화와 허룽은 발해의 옛 수도였다. 

2002년 중국이 동북공정을 노골화하면서 중국은 이미 옌볜지역의 고구려·발해 흔적 지우기에 힘을 쏟았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들의 옌볜지역 출입이 잦아지자 조선족의 동요를 우려한 중국은 96년 중국사회과학원의 핵심연구과제로 고구려 연구를 지시했다. 옌볜지역의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에서 고구려, 발해라는 이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대신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영남일보는 최근 옌볜지역의 고구려, 발해 유적 현장을 찾아 중국의 이같은 작의적 역사왜곡을 확인했다. 

먼저 옌지(延吉)시 교외 동남쪽 성자산성. 조선족은 물론 주민 누구나가 이 산성을 고구려 산성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새로 세워진 표지석에는 고구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발해시기에 쌓았으며, 요와 금을 거쳐 동하국에 이르렀다고 적고 있다. 새 표지석의 부근에 전에 있던 낡은 표지석이 있지만 풍상에 씻겨 비문의 내용을 알 길이 없었다. 

'옌볜문화유물약편'과 '용정현 문물지'는 성자산성이 고구려 때 축조된 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우기는 중국의 고고학자(리원신)조차 성자산성을 답사한 후 고구려 시기에 쌓은 것이라고 못박았다. 

룽징(龍井)시 인근에는 고구려 및 발해산성인 선구산성이 있다. 현지 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갑자기 선구산성이 금나라 때 세운 것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표지석에도 그렇게 명기돼 있다. 발굴작업을 진행한 한족 학자들이 고구려, 발해의 유물이 쏟아져도 요와 금의 유물이 한 점이라도 있으면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표지석 부근 산성촌 마을 주민들은 선구산성을 고구려산성이라고 부른다. 

옌볜의 화룡시 서성진에선 중국 정부에 의해 4년째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 서고성 표지석은 2개다. 하나는 동북공정이 시작된 96년 새로 세운 것이고, 하나는 이전부터 있던 것이다. 옛 표지석은 서고성을 '발해국이 세웠다'고 했으나, 새 표지석엔 발해가 당의 조공국임을 강조해 '당조시기 발해국이 세웠다'라는 사족을 붙였다. 

중국이 옌볜지역의 유적지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흔적을 지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린(吉林)성 지린시 룽탄산공원에 있는 고구려산성 안내문에서 의문이 풀렸다. 안내판의 표제는 '高句麗人 幷非 朝鮮人(고구려인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중국 영토에 살고 있는 200만 조선족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조선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구려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왜곡된 사실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옌볜에선 한국방송 시청을 목적으로 설치한 위성안테나 수신기를 수시로 단속한다. 중국의 동화정책이 한국과의 교류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족 아이들은 한국 TV를 통해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알 뿐이다. 

중국은 2003년 한·중 사이 역사분쟁 이후 특별히 옌볜지역에 대한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2000년 룽징시 역사학회 회원들이 두만강변에 세웠던 '사이섬(간도)' 비석이 3년 뒤 깨부서진 것은 조선족에 대한 경고의 의미다. 

비석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한 인사는 중국 정부의 핍박과 회유를 받았다고 기자에게 실토했다. 그는 "당시로선 '소나기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수용했지만, 그때 상처받은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며 "나름대로 일생을 중국 공산당에 헌신했지만 민족문제만큼은 절대 용서치 않는 중국이 두렵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인들이 조선족 지식인들의 심정을 헤아려 줄 것을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박진관기자 

출처 :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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