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산성(禿城山城)
이름하여 세마대로 부르기도 한다
백제가 쌓았고 삼국시대 신라와 고려를 거치고 거쳐
1593년 7월 권율장군이 *근왕병 2 만명과 북상하다
1594년 9월 4일만에 백성이 합심하여수축을 하고
독산성의 모범으로 금지산성 월계산성 파사성으로
번지고 번지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중요성이 강조되어
선조35년에 변응성이 수축하고 정조도 개축하였다
권율장군은 일본군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조롱하자
백마를 산위로 올려 흰쌀로 목욕시키니 속아서
물이 많아 말을 목욕시킬정도라고 생각하고
퇴각을 명하였다고 하여 세마대라고 한다
수원성 축조하고 사방50여리가 보이는 지형
정조는 성을 전면 수축하여 성내가 완벽하다
늘 눈으로 보고 세마대로 지나다니고 주차장에 올라와 심호흡도 하며 즐기는 장소와 름식점이 많아 외식읗 하던 곳이다
이런곳을 오늘 한버퀴돌며 새삼스럽게 많은것을 배웠다
*근왕병(勤王兵:왕을 가까이에서 지키는 군사)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권율(權慄)이 왜적을 물리쳤던 산성.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았던 성이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곳으로, 도성의 문호와 관련된 전략상의 요충지이다. 1593년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이 근왕병(勤王兵:왕을 가까이에서 지키는 군사) 2만 명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듬해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만에 백성이 합심하여 수축을 하였다. 이와 같은 독산성의 예는 이웃에 모범을 보여 금지산성(衿之山城)에서도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이어 월계산성(月溪山城)과 파사성(婆娑城)으로까지 퍼졌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 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1602년(선조 35) 변응성(邊應星)이 수축하고, 1796년(정조 20) 수원성의 축조와 함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세마대지(洗馬臺)의 전설이 남아 있어,‘독산성 및 세마대지’로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즉 1593년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현재 성에는 석축 약 400m가 남아 있고 4개의 성문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산성 [禿山城]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늘 눈으로 보고 세마대로 지나다니고 주차장에 올라와 심호흡도 하며 즐기는 장소와 름식점이 많아 외식읗 하던 곳이다
이런곳을 오늘 한버퀴돌며 새삼스럽게 많은것을 배웠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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