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문학관 방문기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어제 저녁에 조병화 문학관을 검색하여 위치를 파악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를 찾았다
행정구역이 애매한 곳이 많은데 여기도 미리내 성지가 가까운 곳이라 안성시이기는 하지만 용인시 이동면 송정과 가까워 어찌 보면 송정과의 인연이 많았을 듯 싶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송정초등학교를 조병화시인께서도 다니다 서울로 가셨다고 되어 있었다
입구의 대문이 반정도 열려있었으나 아무래도 열어놓은 것은 아닌 시골의 어설프게 대문을 열어 놓음이다
자동차를 안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대문의 반쪽을 열고 차를 주차 시켰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왼쪽은 문학관 오른쪽은 묘지이다
왼쪽으로 진입하여 걸어 들어가니 오른쪽 산기슭에 산소가 있었고 그 옆에 문학관이 있었다
문에 걸려있는 개관안내표지를 보니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단다
그러고 보니 검색 시 개관과 휴관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는데 내가 못 본 것이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결국 다음날인 2012년 5월 15일에 조병화 문학관을 다시 찾았으며 안내하시는 안성시청 분의 친절 속에 방문을 잘하고 돌아왔다
조병화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 322에서 조두원과 진종 5남으로 막내로 출생.
1938년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943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이과에 입학하여 물리‧화학을 전공했다.
1945년 6월에 귀국한 후 경성사범, 제물포고,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앙대, 이화여대 강사를 거쳐 1959년부터
경희 대학교 문리대학장과 교육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시었으며
1981년부터 인하대학교 문과 대학장, 부총장, 대학원 원장을 재직하시다가 1986년 정년 퇴임하셨다
교육과 문학의 업적을 인정받아 대만 중화학술원에서 명예철학박사와 중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그의 저서는 10개국(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지움)에서 25권이 번역 출판되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시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면서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제4차 세계시인대회장을 1979년 서울 대회장을 맡아 시인들의 교류에 힘썼다
1981년 제5차 세계시인대회에서는 계관시인으로 추대된 바도 있다
아세아 자유문학상(1960), 경희대 문화상(1969)과 대한민국 예술원상(1985),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학상(1992) 등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 세계시인회의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한국의 큰 획을 긋기도 하였으며 문학인으로서의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한편 그는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그의 작품 속에는 화집도 여러 권이 있다
창작시집 53권, 선 시집 28권, 시론 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화집 5권 등을 비롯하여 총160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의 침실』(1952), 『인간고도』(1954), 『사랑이 가기 전에』(1955),
『서울』(1957), 『석아화(石阿花)』(1958),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1959), 『밤의 이야기』(1960),
『낮은 목소리로』(1962), 『공존의 이유』(1963), 『쓸개 포도의 비가』(1963),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내일 어느 자리에』(1965), 『가을은 남은 거에』(1966),
『가숙(假宿)의 램프』(1968), 『내 고향 먼 곳에』(1969), 『오산 인터체인지』(1971),
『별의 시장』(1971), 『먼지와 바람 사이』(1972), 『어머니』(1973), 『남남』(1975),
『창안에서 창밖에』(1976), 『딸의 파이프』(1978), 『안개로 가는 길』(1981), 『머나먼 약속』(1983),
『나귀의 눈물』(1985), 『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1985), 『해가 뜨고 해가 지고』(1985),
『지나가는 길에』(1989), 『후회없는 고독』(1990), 『찾아가야 할 길』(1991),
『낙타의 울음소리』(1991), 『타향에 핀 작은 들꽃』(1992), 『다는 갈 수 없는 세월』(1992),
『잠 잃은 밤에』(1993), 『하루만의 위안』(1994), 『시간의 속도』(1995),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1998),
『공존의 이유』(1998) 등 많은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외로운 도시인의 실존적 모습, 허무와 고독으로서의 인간존재가 꿈과 사랑으로 자아의 완성에 이르는 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쉬운 낭만의 언어로 그려냈다
그의 다작의 비결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를 쉬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독자와 솔직한 대화를 이루어 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현대시가 난해하고 안 팔린다는 통념을 무너뜨린 희소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림 분야에도 일가를 이루어 15차례에 이르는 개인전을 갖기도 하였다.
그는 고향에 편운재와 청와헌를 지어 편운재에서는 작품을 쓰시고 지인이나 제자와의 숙소로 사용하시고 청와헌은 그림을 그리는 화실로 제자들과 여생을 함께하시기도 한곳이 있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하였다
지금은 안성시에서 조병화 문학관을 지어서 별채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주 작아 보였다
편운제와 청와헌은 열지 않고 문학관에서 문학강의나 조병화선생님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돌아 가시기전 얼마 전에 필을 놓으시는 자리를 만드셨다고 하며 그리고 난 뒤 얼마 뒤에
2003년 3월 8일 사망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
입구에 이러한 프랑카드가 붙어 있었고 안내하시는 분이 올해의 조병화 문학관의 홍보용 캐치프에이라고 하신다
내용을 보면 첫 페이지에
경기도 안성 작은 마을 난실리에 꿈많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보다 많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은 책으로, 상상으로,
소년은 그림을 좋아했다
자연과 인생은 그대로 소년의 교실이었다
소년은 몸은 약했지만 달리기를 잘했다
상급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육상경기 부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럭비 부에 발탁되어 선수생활을
나라안에서, 나라밖에서, 지고 이기고 수백 번을 했다
소년은 어느덧 자라서 청년이 되어
그 먼 꿈을 잡으려 바다를 건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어두운 시대
일본 식민지 조선인 학생을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이 나고 돌아온 조국은
그립던 조국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의 패 싸움판.
청년이 된 꿈 많던 소년은 모든 유산을 버리고
시 속으로 숨어 들어야만 했다. 위안처럼 구원처럼.
소년은 가진 것 하나 없이 이 세상 나와서
돈들이지 않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교수도 되고, 화가도 되고, 시인도 되어
여행도 많이 하고, 그림도 많이 그리고, 시도 많이 써
굵은 상도 많이 타고, 태어난 고향도 문화마을이 되었다.
노인이 도니 꿈 많던 소년은
그 많은 은혜를 다 합쳐 보답하기 위하여
문학상을 만들고, 문학관을 마련하고
다시 빈손으로 어머니 곁에 돌아와 누었다.
영혼이 된 시인은 우리에게 행복을 보여 준다.
시는 언제나 푸른 보이지 않는 큰 자연이라고 들려준다
인생은 꿈을 가지고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라고 속삭인다
이 글이 이 책 앞에 붙여진 서두며 서언으로 명시다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내 고향 난실리/출발/종달새/오산역을 스칠때마다/가시오피아 성좌/먼 곳을/스스로를 그리며/
이동하면서/운동장에서/첫사랑/먼 꿈을/ 나의 인생 방정식/세월은 유수와 같다/
소라/주점/임해교실/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파리/밤의 이야기. 20/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편운재 기/내고향 장재봉 난실리/청춘에 기를 세워라/
호수/개구리의 명사.3/황홀한 순간/칠레꽃/어느작별.1-파이프에게/
어느작별.2-술에게/우리 난실리/시는 영혼의 화석/황혼의 노래/내일/꿈의 귀향/지금 나는/작은 보따리/비석/행복/시는/인생은 운명이라 하셨지만 까지 39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얇은 책이지만 그의 그림과 글이 함께 담아진 의미 있는 책이다
아래 사진에 보면 몇 편의 작품을 사진으로 남겨 있지만 2편을 골라 적어본다
종달새
종달새는 구름이 집이런가
온종일 구름에 떠서
봄 하늘을 말짱히 닦아내누나
보이지 않게
이곳에서 저곳에서
이 시를 읽으면 아주 간결하지만 봄날의 고향하늘이 연상된다
종달새는 하늘높이에서 노래를 하며 즐기는데
맑지 않은 날은 종달새도 하늘 높은 곳에서 울지 않는다
이 글을 통해서 고향도 생각이 나겠지만
꿀꿀하고 언짢은 모든 것이 확 트이고 날아가는 느낌이다
어느 작별. 2 -술에게
참으로 엄청나게 마셨지
서울, 명동, 종로를 다 마셨지
그 부조리를 다 마셨지
그 폐허, 허무를 다 마셨지
그 허영, 굴욕을 다 마셨지
그 절망, 희열을 다 마셨지
그 인생을 후회 없이 다 마셨지
그리고 지금 이 의사의 엄명
술하고의 작별, 참으로 고마웠지
쓸쓸하던 때나 즐거웁던 때나
아마 이 작품은 병원에서 술을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듯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건강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하다
건강이 안 좋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별 짓을 다하며 산다 하지만 이렇게 약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나의 몸에 비교한 삶의 현실도 그런 것 같다
이번 조병화 문학관을 방문하면서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며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명언 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조병화 어머니는 물론 아버님도 산소가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아드님 듯한 분이 밭에서 상추와 쑥갓 그리고 열무나 채소밭에서 김을 매시는 것을 보았다
조용한 시골이라고 해서 답답함도 있으시겠지만 아드님 생가 앞과 편운재와 청와헌 옆에 서있는 마로니에 나무에 꽃이 아주 많이도 피어 있었다
조병화 문학관 전경
몇일전 축제가 있었다
편운재(시을 쓰고 숙소)
청와헌(그림을 그리던곳)
어머님 말씀(살은 죽은면 썩는다)
가계도
조병화 편운 문학상 수상자
해마다 봄이 오면 시비
현재 아드님이 기거하는 집
문학인들이 함께 기념식수한나무에 꽃 만발하였다
머로니애 나무 꽃이 많이 피었다
수국도 환하게 피었다
'수필및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나의 이해 (0) | 2013.09.05 |
---|---|
30. 칠보산 나들이 (0) | 2013.09.04 |
28. 제주도 여행 5일차는 우도를 가다 (0) | 2013.07.26 |
27. 제주도 여행 강행군 4일차다 (0) | 2013.07.26 |
26. 제주도 여행 삼일차는 한라산을 가다 (0) | 2013.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