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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핑크스에 숨겨진 역사를 뒤바꿀 미스터리들

泉玟 김동석 2008. 11. 15. 23:37
스핑크스에 숨겨진    역사를 뒤바꿀 미스터리들

 

 
 
 

 

스핑크스 주위에 난 흔적들
 
 
스핑크스가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은 요즘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는거 같다. 왜냐하면 이집트학적 방향말고 과학적 연대를 따져서 살펴본 결과 너무나도 의아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이집트학자 존 엔소니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그래이엄 핸콕(내가 좋아하는 )씨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스핑크스는 지금까지 기원전 2500년경에 카프레 왕이 건립했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원전3000년경에 왕조가 시작되고부터 기자에는 별로 비가 내리지 않았죠. 그러나 스핑크스 몸에는 다량의 비에 의한 침식의 흔적이 남아있지요. 그 정도의 침식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강우량을 필요로 하는데 이집트에 그와 같은 기후가 있었던 것은 기원전 1만년전입니다. 따라서 스핑크스의 기원은 기원전 1만년전에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어요. 또한 그 장엄하고 세련된 예술작품들을 보면 고도의문명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건립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
 
또 한명의 보스턴 대학 지질학과 교수인 로버트 쇼흐씨의 말이 있다. "
문제는 BC 2500년의 이집트 날씨가 바로 오늘날처럼 바싹 마른 상태여서 1년동안 내린비가 1인치 미만이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고(古)기후학자들은 우리에게 날씨가 습했던 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다. 스핑크스의 특징적인 풍화를 야기시킬만큼 충분한 비가 동쪽 사하라 사막에 마지막으로 내린 시기는 BC 7천~ BC 5천년사이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이 문구를 보고 난 많이 생각했다. 절대로 지금의 기자지역, 아니 이집트 전체를 생각해도 비가 잘내리는 기후는 절대아니다. 그럼 몸에 생긴 침식의 흔적은 뭘 말하는걸까? 바람? 웨스트씨는 그런 가능성은 처음부터 제외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람에 의한 모래의 작용으로는 현재의 스피크스처럼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바람과 모래로 설명이 되었다고 하면 처음부터 물(비)에 의한 침식의 가능성은 생각치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연대가 기원전 1만년전이라고 한다면. . .
그 사실이 맞다면. . . 지금의 세계 교과서의 모든 부분을 바꿔야하는 일대 혼란이 생긴다. 현재 문명이 있기전에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간 전에 벌써 스핑크스를 만든 문명을 인정해야한다니까 문제가 크다. 흐. . . -_-;  하지만. . . 피라미드 첫부분에서도 말했지만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있기전에 반신반인(反神反人:이들이 신이라곤 생각할 수도 있으나 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게 어떨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으며 역사또한 되풀이 되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지금의 일직선적인역사(지금까지의 문명은 현재의 문명만이다라고 믿는 역사) 말고 굴곡이 있는 역사 (이를테면 문명이 몇 번이나 사라지고 생기고 했던 역사)는 이집트 뿐만이 아니라 인도나 잉카 문명에서는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서에 큰 환란이 일어나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생명을 보호하고 다시 새 삶을 기다렸다는 것. 홍수의 이야기는 성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여러나라의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또한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전승들에 의하면 이전에 네 시기 혹은 '태양들(시대의 단위로 생각하면 된다)'이 있었으며 각 시기는 지구 표면을 깨끗이 쓸어 버린 대재앙으로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 번째 시기는 마야력(歷) 8쿰구(Chumku) 4아하우(Ahau)로 서력 BC 3314년 8월 13일에 시작되었고 3칸킨(Kankin) 4 아하우에 거대한 지구 운동에 의해 재앙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한다.
 
 
 
 스핑크스의 기본!!
 
 
스핑크스는 '교살자'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며 원래 이집트 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로 불려졌다.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서 주변을 골짜기 같이 깎아서 만들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피라미트처럼 단을 쌓아서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서 만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스핑크스는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변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기원전 1400년경 투트모세 4세가 왕자시절 사냥 후 지쳐서 스핑크스 머리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스핑크스가 '숨막히는 모래에서 나를 꺼내주면 왕이 되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뒤 모래를 치워 스핑크스의 모습을 드러내게 했고, 왕이 된 투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의 두 발 사이에 이 꿈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머리는 턱 끝부분에서부터 이마꼭대기까지 크기가 19피트(5.8 미터)이고 얼굴폭이 20피트이다. 그리고 원주가 91피트(27.7미터)이다. 스핑크스의 발은 전방으로 56피트(17미터) 뻗어있고, 몸통은 길이가 172피트(52.4미터)(총 몸길이는 242피트)이고 높이는 머리꼭 대기까지 66피트(20미터)이다.
 
 
 
  스핑크스의 의문스러운 점
 
 
스핑크스는 한동안 모래에 많이 묻혀있었다. 스핑크스의 발 사이에 있는 화강암판에는 투트모세 4세가 통치했을 때 스핑크스는 머리까지 모래속에 묻혀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투트모세 4세는 모래를 모두 제거하고 그 일을 마친 기념으로 비석을 세웠다.
이말은 앞에서도 언급됐다. 여기서 투트모세 4세의 비석을 연구한 이집트 학자 가스통 마스페로는 자기책인 '과거의 제국'에 - 스핑크스 비석 가운데 13번째 공란에 카프레 왕의 카르투슈가 나온다. 이것은 카프레 왕의 시대에도 스핑크스모래가 제거(그리고 복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핑크스는 쿠푸왕 시대와그 전임왕 시대에 이미 모래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 라고 썼다. 그리고 1818년 카비글리아 대령이, 1886년에는 가스통 마스페로가 유적을 파내기 위해서다시 모래를 제거했다. 또 39년후인 1929년까지 모래가 다시 불어닥쳐 스피크스는 목까지 잠겼다고한다.
 1929년에 이집트 고고학청이 모래를 제거 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켰다. 왜? 왜 당연히 모래가 이렇게 쌓일줄 알면서 스핑크스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만약 스핑크스를 만든이들도 모래바람에 쌓여가는 모래를 일부러 치워가며 만들었을까? 의문스러운점이다.
현대의 건축가들도 이런곳에 건물을 쉽게 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연대를 1만년전으로 돌아가면 이 지역의 기후는 영틀려진다. 지금보다 습기가 많고 비교적 풍요로운 땅이었다고 한다. 이곳이 풀과 나무가 있었던 기후였다면 그렇게 성가시게 모래를 치우는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만약 1만년전이었다면 피라미드가 모래에 덮히고 그런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대별로 스핑크스의 사진을 볼까요?
 


1858년
:

1890년 


1930년 


1937년 

스핑크스는 여러번에 걸쳐 모래에 파묻혀 있었으며
고왕조때에도 모래제거 작업을 했었었다고 해요.

 
 
  스핑크스의 방위
 
 
 고대 이집트인들은 스핑크스를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으로 믿었고,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힘의 총체"로서 숭배했다. 이런 말은 스핑크스가 정동을 향하고 정동에서 뜨는해를 볼수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생각엔 하루가 시작되는 모든 것은 해가떠야 가능했고 모든 생물을 통틀어서 태양에너지 즉 태양의 힘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그럴 것이다.

스핑크스는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일종의 기계적 장치같은 것으로 생각하는게 요즘 학자들의 생각이다. 근데 왜? 꼭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여기서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피라미드와 같이 하늘로 눈을 돌려 황도의 별자리를 살펴보자. 황도의 별자리는 총 12개이다.
이것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주기적으로 해의 일출의 뒷배경을 장식한다. 그러니까 춘분날에 물병자리라던지, 처녀자리라던지 꼭 황도12궁의 별자리를 배경으로 해가 뜨게 된다는 것이다. 세월이 변해감에 따라 별자리도 같이 변한다. 이까지 이야기를 하고 무엇인가를 느끼는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추측한 대로 황도12궁엔 사자자리가 있다. 뭔가 미심쩍지 않는지. . . 아마도 이러한 스핑크스 배치 또한 황도 12궁의 사자자리별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은지. . .  그럼 사자자리가 춘점으로 한 시대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기원전 1만970년에서 기원전8810년까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핑크스주변에 난 강우에 침식의 연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가된다. 기원전 1만년전이라는 시간이 말이다. 머리아픈 일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 공룡의 뼈가 하나둘씩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로서 현대인에게 또하나의 거대한 공룡시대와 같은 어마어마한 역사가 밝혀질지도 모를일들이다.

출처 : 미스테리의 진실
글쓴이 : 화이트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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