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충청도에서 다녔다
고향이 경계선이라 본적은 경기도요
자란곳은 충청도다 그러니 충청도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시절엔 뜻이 있어 이천농고 축산과에 지망했다
대학은 예비고사가 있는시절에 서울농대아니면
안간다고 생각하고 집에도 둘째형에게도 말씀드렸다
실력이 안되어 떨어질것이 뻔했던 사실인데
집안 형편도 그렇고 막내로 태어나 조카들과 같이
자랐기에 농촌 실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큰형님자식이 7명이요 둘째형자식이 3명이 있다
세째형도 7명이다 물론 결혼하여 한집에 살다가
분가를 하였고 큰조카와 학교 동창이다
그러니 대학에 가면 정말 힘든일이다
형님에게 의지 할수도 없고 아버지는 60이 넘으시고
나로서는 그나마 학비가 싼 서울농대다
그래도 우리집이 아버님이 열심히 하시고
남에 집도 지으시며 목수일도 하신 덕에
시골 동네에서는 밥은 먹고 사는 처지였다
하지만 줄줄이 있는 조카며 위의 누나 까지 하면
형님들에게 의지하기가 그랬다
그러나 서울대에 속하는 서울농대는 만약 붙었다면
안보낼수없는 현실이요 아버지 성품이나
형님들 성품으로 꼭 보내셨을 것이다
빚을 지거나 땅을 파셔서 라도 그랬을것이다
학교에서 공부 좀 했다고는 하나 농고이며
또 서울대다 그러니 내실력으로는 안될걸
뻔이 알고 지망한것이다
졸업을 하고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며
전투경찰대 지원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경찰시험을 한번 보리다 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지망하여 합격하고 논산에가서 귀향을 했다
인생이 여기서 바뀌는 한계기가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보자
배운것이 이거니 한번 농촌에서 커보자
그해에 셋째형집이 장마에 떠 내려가고
새집을 지어야 하는데 무리를 하였다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다리가 힘이 없어
원인을 못찾고 운동만 계속하여 단련을 하였다
그러면서 방송통신대학을 지원하여
낮에는 들에 나가 일을하고
밤에는 방송을 들으며 농학과 수업을 들었다
한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출석수업을 위해
수원에 있는 서울농대에서 수업을 받고 시험도
보았는데 학점이 두과목에서 에프가 나왔다
둘째형이 수원에서 근무하시고 있어 집걱정을 안하여
삼성전자에 시험을 보아 일반직으로 입사하여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것이다
대학도 못나오고 군에도 안다녀오고
또 고등학교도 실업계중에서 농고니 대우가 안좋았다
일도 잘 몰라서 힘들게 배웠다
남들보다 두세배는 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자니 2학기 출석수업이 10일정도 되는데
간다고 말할수도 없었다
요즘같으면 나의 주장도 하련만
그시절은 어림도 없었다
오늘 고등학교 모교인 이천제일고등하교
동문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한다
수원에서 늦게 출발한데다 차도 밀리고 하여
도착하니 2시20분이다
그래도 10여명이 남아 있었다
오랫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즐거운시간을 보내고
이천농고가 이천실고로 거기서 다시 제일고로
변경되어 학과도 많이 변했다
제일리을 지나 오천리를 지나고 억억다리를 건너이천리를 지난뒤
구만리뜰을 지나야 효양산에 간다는 이야기가있다
그말을 듣고 다시 돌아갔다는 선비가 있다고 한다
모두가 명칭인데 지레 겁먹고 돌아갔다는
그거리을 오늘 다녀오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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