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
향교를 지나 오르다 보면
바위덩이로 밖에 볼수없는 것을 본다
철가이드 라인이 없다면 당연 돌덩이
지석묘군으로 고인돌로 남향에 자리하고 있다
선사시대나 청동기시대부터 있던 고인돌
역사도 없던 시절에 역사로 남았네
팔달산 서장대 올라서면
아늑한 화성행궁에 수원화성이 세계를 부른다
탑산으로 부르다가
이고의 아름다움에 태조 이성계가 사통팔달하다 하여
팔달산으로 부르게 하였다 한다
강감찬 장군비에 삼일운동기념비 홍난파 기념비
수원의 사통팔달한 팔달산
혈처의 자리에 동서남북 수호하는
화성 서장대·서노대·서포루·화양루 등 원형이 보존되어
이들과 산의 조화가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경기도 수원시 중심에 있는 시의 주산이다. 옛 이름은 광교산 남쪽에 있는 탑 모양의 산이라 하여 탑산으로 불렸고 지금의 이름은 조선 태조 때부터 불리기 시작하였다. 시내 중심에 있고 산 전역이 아름다워 1974년 팔달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수원부읍지》에 '수원부의 주산이며 고적이 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는 탑산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고(李皐)와 관련된다. 은퇴한 이고가 세상을 떠나 이 산자락에 살았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에 있는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조선 태조가 은거하던 이고에게 벼슬을 권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태조가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도심 속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여 시 전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화성은 서장대·서노대·서포루·화양루 등 시설물을 거느리고 있으며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이들과 산의 조화가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서노대에서는 한강 이남의 동서남북이 두루 조망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산은 수원시의 혈처에 해당된다고 한다.
산에는 3.2㎞의 순환도로와 3개의 약수터, 각종 운동을 위한 시설과 산책로를 비롯하여 강감찬 장군의 기마동상, 홍난파 노래비, 3·1운동 기념비, 효원의 종 등이 설치되어 있다. 6·25전쟁 당시 산림이 거의 파괴되었으나 1960년대 초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팔달산(八達山)은 경기도 수원시의 산이다. 옛이름은 탑산.
이태조가 조선을 개국하고 탑산에 은거해 있는데 고려말 3학사 중 한 분이 조정에 내려올 것을 누차 권고했으나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라 했다 한다. 그림을 본 이태조는 "역시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하며 산이름을 팔달산이라 명명하였다. 팔달산에 오르면 수원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수원성곽이 고스런히 보존되어 있어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1948년 8월 15일 한국의 독립을 기념해 일제 순사 노구찌의 순국비를 부순 자리(중포산)에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세웠다. 1969년 3월 1일 삼일동지회는 삼일독립기념탑을 팔달산에 세우고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새 기념탑 옆으로 옮겼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