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및 기행문

18. 천진시 조선족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泉玟 김동석 2012. 9. 17. 15:15

 

2011년 12월 20일 느닺없는 전화로 초청을 받았다

다름아닌 천진시 동려구 조선족 노년회에서의 부름이다

무슨 행사때마다 초청되어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 유일한 곳이다

오늘은 2011년 총회인듯하다

회장도 다시 뽑고 올 살림살이도 이야기하고 내년도 살림은 어찌 살까하는

그런 이야기의 자리인듯하다

들어서니 천진 노년회 회장님이 협회를 위하여 열변이시다

그동안 동려구 노년회를 보아온 소감을 이야기하였으며 회장은 연임하는것으로

만장일치를 보시고 회장인 박금옥여사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내용인즉 천진시에는 조선족 모임이 많은데 어디를 가시든 상관하지 않는다시며

좀 섭섭하기는 하여도 우리 노인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어디서든 마음에 맞는 분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시기를 바라며

혹시 갔다가도 돌아오시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이다

눈치보지 말고 다시와서 행복하게 즐기시라는 이야기다

삐져서 못오시게도 할법한데 아니다 언제든 다시 오라는 말씀이다

다음은 박춘보 초대회장님의 말씀이 계셨다

길림신문을 들고 나오셨다

"천진시 유일한 조선족마을이 이제 사라지네"라는 제목의 신문 제목이다

중국 천진시 동려구 보원촌

여기는 몇해 전만해도 조선족 소학교와 유치원이 있었고 식당도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도 없어지고 우리 교민이 사는곳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것이다

개발계획에 잡혀 있는곳으로 아파트가 들어올지 공장이 들어올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보원촌 마을이 조선족 마을로 생긴것은

지금 2011년이니 60년이 지난 세월이란다

중국이 동북 삼성에 거주 하는 사람은 소수민족으로 중국국적을 주며

동북 삼성 남쪽에 있는 사람은 중국국적을 주지 않아 그당시는 모두 동북 삼성으로

거주지를 옴기여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먹고 살기 위해 거주지를 옴기는 날이 왔다고 한다

이때가 1955년 2월 18일로 잊을수 없는 날이라고 한다

심양에서 살다가 당시 김진근조교(북조선교포사업가)가 세우려는 유지공장에 온것인데

계획이 무산되어 보원촌에 정착한것이라고 한다

이때는 북한이 우리 남한보다 더 외교적으로 중국과 가까웠기에 북한 사람들이

천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의 여권을 가지고 여기서 사업을 하듯이 말이다

사업을 하여야 하는데 한족보다는 우리 민족이 필요하다고 하여 이삿집을 싸들고

천진으로 온것이 보원촌이란다

보원촌을 조선족 마을로 인정 밭기도 당시는 어렵게 받았다고 한다

리락진,최륙선,리우석,리경심,그리고 18살때 외삼촌을 따라 어머니를 모시고 6가구가 온것으로

회사취업은 안되고 보원촌에 살집을 마련하고 소금물이 나는 갈대밭을 파고 또 파면서

찔리고 또 찔리면서 논농사를 짓기까지는 숫한 역경이 있었다고 한다

전기는 1973년에 들어왔다고한다

다시말해서 등잔 호롱불에 밤을 새우는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이 수교되면서 천진에는 많은 기업들이 입주하였다

1992년 수교가 되기 이전부터 홍콩을 경유하여 들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교이후 기업들이 많이 들어 왔는데 제일먼저 들어온것이 의류로서 의류도 다양하여

속옷이나 겉옷, 그리고 정장이나 청바지와 세타짜는것들이 들어왔고 가발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것이다

그리고 신발과 낚시대나 생활용품이 인건비로 인하여 물밀듯이 들어온것이다

자연 우리 동포들이 있는곳 주변에 공장이 들어섰으며 동북에서 하나둘씩 이쪽으로 이주를 하게 된것으로 이동네 주변이 신해로(신하이루)와 풍년촌(퐁낸춘)이 보원촌과 붙어 있는곳이다

대우전자가 대항구에 엘지전자가 북진구에 삼성전자가 당고구에 처음으로 온것이 1992년대 일것이다

그리고 엘지 생활용품이 북진구와 당고구에 들어 섰다

지금은 삼성전자(브티알,모니터 티브이,통신,카메라.엘리디)와 전기 테크윈과 에스디아이등등이 진출하여 있지만 그당시는 아주 낙후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민족이 자연스럽게 분산이 되어 이제는 동북 삼성에는 호구만 남겨두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것이다

조선 민족이 2백만이라고 추정하였는데 현재는 한국에 3~4십만이 가있고 중국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어서 동북에는 백만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흩어진것도 서러운데 천진에 어렵게 받아놓은 조선족 마을을 박춘보 어르신은 안타까워 하시며 하소연을 하신다

이제 60여년이 지난 지금에 남아있는 본인의 젊은 날과 지난세월의 조선족의 천진역사를

알리고 싶고 또 없어질 위기에 모인 보원촌 조선족 마을을 살릴수 없을까 하는 생각뿐이시다

아래 신문기사를 보면 샛별 조선족 소학교라고 간판이 남아있다

12가구가 있던 우리민족의 호구가 이제는 6가구만 안남아 있는데

그중에서 박춘보선생님과 김도명선생님 2가구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하신다

이것도 마을의 집을 팔고 나오셔서 근거가 없는 셈이 되었다 한다

사진은 70이 넘으신 박춘보선생님과 김로명 선생님사진과 촌사무실 그리고 입구사진이 보이며

지금도 남아있는 신씨네와 박씨네 보신탕집이 간판으로 남아있으나 앞으로 이 마을이 우리들 기억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박춘보 선생님을 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데 자기가 나서서 조선족 마을을 살릴 수 있다면 남은 여생을 힘쓸것이라는 의지가 보이셨다

몇번을 마음먹었다가도 아들딸들이 만류하여 이제는 73세의 고령에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대꾸도 없이 사는게 우리민족에게 죄를 지는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이라도..........한번 더 마을을 유지 하도록 해봄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길림신문에 게제된 천진시 조선족 마을이 사라지다라는 기사다

사진의 좌측이 박춘보 노년회 초대회장이시며 보원촌에 처음오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