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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산에는 전설도 역사도 있었다

泉玟 김동석 2015. 11. 8. 23:54

설화산에는 전설도 역사도 있었다 


화산에는 전설도 역사도 있었다 



산행일시 : 2015년 11월 8일

함께한이 : 개미실 산우회 18인 


설화산은 아산시에 자리하고 있다 금맥정맥에 있는 산으로 주변에 태화산 배방산 망경산 광덕산등이 있는 곳으로 산높이는 441미터라고 하고 448미터라고도 한다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에 배타망설을 총 20키로를 종주한다고 하는데 오늘 개미실 산우는 꼼꼼하게 준비하신 이흥우대장의 산행지도에 맞추어 좌부동 맹씨행단에서 시작하여 설화산을 올라 연안이씨들의 400년을 내려오면서 살고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로 내려와서 저잣거리에서 수구리탕을 먹는것으로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서울에서 9명과 수원화서에서 4명 선일초교에서 5명하여 18명이 7시에 출발하여 선일까지 8시30분에 도착, 출발을 하게 되었다 

코스는 화성평택도로를 타고 내려가서 아산만 방조제를 거쳐 염치를 지나 목적지인 좌부동 맹씨행단에 도착한시간이 열시가 조금 넘었다 


맹씨행단 맹사성고택을 둘러보는데 십여분 들려 보았다

설화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는 맹사성 고택은 수백여년간 무사히 보존되어 온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유물이다.
고려말 충신이던 최영 장군이 지은 건물로, 그의 손자사위인 고불의 부친 맹희도가 인수하여 대대로 살아왔다. "工"자형의 맛배집으로 목재는 광솔이 되다시피 그을렸으며, 또 기둥과 도리 사이에는 단구로봉설(봉황의 혀)이 장식되었고, 내실 천장은 "소라반자"로 흔히 볼수없는 나무반자이다.  맹고불의고택, 구괴정, 쌍행수 등을 망라하여"아산맹씨행단" 이라 한다.

은행나무는 삼정승의 삼인을 뜻하여 세그루를 심었는데 두그루만 남았고 한그루는 2~3백전부터 몇개의 새순이 나와서 자라고 가운데 원목은 고목이되어 보호를 하여 콩크리트처럼 벽을 만들어 놓았다 600년이 넘는 보호수며 회화나무도 600년이 넘는 보호수가 있었다 아직도 맹씨가문이 살고 있었고 관광객은 많은데 국가에서 보존하는데 비용이 나오는지는 몰라도 아무나 들어갈수있도록 하였으며 문이 열려 있었다 

工자의 집안구조는 대청을 잇는 대들보가 있고 좌우에 대들보가 있어 가운데가 대청 좌우로 방이 있어 가족이 사랑채와 나누어져 있는 집과는 다른 구조로서 흔치 않은 구조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시기가 늦가을인지라 은행잎이 노랗게 단풍이 지고 은행이 풍년이 들어 매달리고 떨어지고 하여 주변이 온통 은행이 널려 있었다 

물론 이나무이외도 은행나무가 주변에 많이 자생하여 수백년 묵은것도 많었다 

단체 사진과 인증삿을 마치고는 산행은 시작되었다 

산높이 해발 448미터에 거리 1490미터로 안내표지가 있었다 산행길은 낙엽이 떨어져 즈려밟고 가는 느낌으로 사각사각한것이 돌뿌리도 몇개없이 부드러운 전형적인 산길이었다 

팔부계곡에서 일행들은 바리바리싸온 음식을 풀어서 막걸리와 과일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최고의 별미를 먹는 순간을 갖었다

닭발로 만들 누른고기는 별미였다 전과 고추삭힌것을 함께 먹는 순간은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거기에 막걸리는 별미중 별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48정상과 417두번째 산봉우리 사이로 고갯길이 있었다 고갯마루다 

여기에도 걸터 앉을수있도록 탁자를 만들어 산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정상까지는 260미터로 되어 있었다 

정상을 향하는 마음은 가벼웠다 거리가 짧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마음은 잠시다 고바이로 까까리로 경사가 거의 45도이상이다 정상까지 가이드와 로프를 만들어 놓았다 다행이었다 이길은 바위와 돌뿌리가 제법있는 길로 숨이 가뻐지고 다리가 후들해지기도 했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3~5미터깃대를 세우고 펄럭이고 있었고 정상에도 사각탁자를 만들어 놓아 쉴수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상에는 바람이 찻지만 모두들 메아리도 치고 환호를 보내는 모습이 산에오는 기분을 만끼하는 순간이다  

정상에서 단체사진도 찍고 태극기와 인증삿도하고 가지고온 감을 먹으면서 설화산의 푯말을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설화산은 좌부동과 송악면 그리고 배방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서쪽 산기슭에 외암민속마을, 동쪽 산기슭에 맹씨행단을 품고 있는 해발 448m가 되는 높지 않은 산이다. 이른 가을철부터 늦은 봄철까지 눈이 덮여 장관을 이룬다해서 설화산이라고 한다. 또한, 붓끝 같은 봉우리가 솟아 있어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오봉이 있다하여 오봉산이라고도 한다 그 기세가 매우 독특하여 문필가 등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곳에는 칠승팔장지지의 명당이 있어 예로부터 투장이 성행하여 가뭄이 들면 투장한 곳을 찾아 파헤치고 기우제를 지내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고도 한다 

내려오면서의 길도 경사는 있었지만 낙엽을 밟고 내려오는 기분은 너무 좋았다 산행을 하다보면 대부분 여러인파로 나누어지기 쉬운데 여기서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내려올수있었다 전통 초가집이 보이기 시작하여 민속마을인가 싶었는데 내려오면서 기와집도 초가집도 잘 어우러진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가 외암리 민속마을인것이다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 경계인 광덕산 밑에 위치하고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에는 약 4백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다. 문중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큰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옛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많다.
이끼 낀 돌담을 돌면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 할 수 있는데,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뜰안에 심어놓은 감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등이 들여다 보인다. 가구수가 86호인 외암리 민속마을에는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밖에 많은 민속유물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사극이나 영화촬영이 종종 있다.
국가지정 민속자료 제195호인 아산 외암참판댁과 주변에 보물 536호인 석조약사여래입상 등이 있다.

내려오면서 조청이나 농산품 엿 전통술등을 각각의 집안에서 팔기도 하였다 가격이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싸도 연엽주를 댓병을 사서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별맛은 없었지만 전통주의 맛이 있어 한잔씩 나누어 마시는 기쁨을 맛 보았다 

외암천이 흐르는 입구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그리고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왔다 이흥우대장이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반대편에서 와서 2000원해서 36000원을 아낀꼴이 되었다  

주차장과 주변에 저잣거리가 있었고 우리는 음식점과 민속놀이기구들을 보면서 점심겸 저녁을 먹었다 

경상도 전통음식이라는 소가죽과 살과 사이에있는 고기로 만든 수구리국밥을 먹었다 물론 막걸리와 이슬이도 함께 걸치면서 산우중에 홍어회나 돼지껍데기를 해오시는 김영희님이 안오시어 못먹나 싶던 돼지껍데기를 써비스로 주시어 우리는 이슬이와 막걸리를 더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다 

온양온천에가서 목욕을 할까하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대로 오던길로 산행을 일찍이 마치고 왔다

평소같으면 늦은시간에 도착하는데 5시가 안되어 도착하니 아내가 왠일이야고 오히려 반문하였다 언제 시간나면 가족들과 외암마을 민속촌은 다시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개미실 산우들의 정다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원당친구 안숙친구가 이번에는 참여하여 더 좋은 시간이 된듯하다 

늘 이렇게 한달에 한번씩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약속하면서 늘 앞에서 힘쓰는 회장님 총무님 그리도 산행대장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설화산 산행기를 올려본다 




 금북정맥 줄기에 놓인 설화산은 남쪽으로 천안의 광덕산과 맥을 같이 한다. 설화산 서쪽과 동쪽 기슭은 풍수지리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고려 말부터 반가(班家)의 고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남쪽 기슭에는 조선조 청백리인 맹사성 집안이 살던 고택이 있고, 서남쪽 기슭에는 조선 명조 때부터 예안 이씨들의 세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