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문학/문학과예술

八景[관동팔경]은 강원도를 중심으로(퍼온글)

泉玟 김동석 2010. 10. 5. 07:49

八景[관동팔경]은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의여덟 명승지로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
2 고성의 삼일포
 
 
3) 간성의 청간정,
 
 
4) 양양의 낙산사
 
 
5) 강릉의 경포대
 
 
 
 6) 삼척의 죽서루
 
 
 
7)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
 
 
 
8 평해의 월송정을 일컬으며,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를 넣기도 한다.

 

흰 모래사장과 우거진 소나무 숲,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조망,

 

해돋이 풍경 등 바다와 호수 및 산의 경관이 잘 어우러진

 

빼어난 경승지로 이곳에 얽힌 전설·노래·시 등이 많다.

 

특히 고려말 안축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총석정·삼일포·낙산사 등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관동팔경과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山水美)를 노래했다.    

1. 총석정(叢石亭> 강원도(북한) 통천군 통천읍에 있는 정자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이다. 통천읍의 동쪽, 동해에 돌출한 해식애(海蝕崖) 지대에있으며 그 아래 바다 속에 구릿빛으로

 

그을은육각형의 현무암 돌기둥이 여러 개 총립(叢立)하여 절경을 이룬다.

 

높이가 100척이 넘는 돌기둥도 있다. 고려시대에 기철(奇轍)이 총석정에 올라 동해를 굽어보며 지었다는

 

《총석정가》라는 가요가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2. 일포(三日浦) 강원(북한) 고성군에 있는 호수 면적 약 0.7km2. 둘레 4.5km.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고성에서 온정리(溫井里)로 12km 가량 가면 북쪽 언덕 너머에 있다. 석호(潟湖)로 북서쪽에 거암이 솟아 있고, 남쪽 호안에는 기암이 많은 구릉이 있다. 신라시대에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석랑(南石郞) ·안상랑(安祥郞) 등 4국선(四國仙)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삼일포라는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근처에 사선정(四仙亭) ·몽천암(夢天庵) 등이 있다. 3. 청간정(淸澗亭) 강원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청간리에 있는 정자.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정자의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未詳)이나 1520년(중종 15)에 간성군수(杆城郡守) 최청(崔淸)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 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 후 1955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명으로 보수하였고(지금의 현판은 그의 친필),

 

1981년 4월 대통령 최규하(崔圭夏)의 지시로 해체복원(解體復元)하였다.
4. 낙산사(洛山寺) 강원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절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으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고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이 절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6일에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 절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
(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5. 경포대(鏡浦臺) 강원도 강릉시 저동(苧洞)의 경포호 북안에 있는 누각.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28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1326년(충숙왕 13)에 안무사(按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중종 3)에 부사(府使) 한급(韓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를 중심으로 8경이 있는데,

 

녹두일출(菉荳日出) ·죽도명월(竹島明月) ·강문어화(江門漁火) ·초당취연(草堂炊煙) ·

 

홍장야우(紅粧夜雨) ·봉낙조(甑峯落照) ·환선취적(喚仙吹__)

 

한사모종(寒寺暮鍾) 등을 말한다.
6. 삼척 죽서루(三陟竹西樓 강원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있으며, 옛날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는데, 그 후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구기(舊基)에 의거하여 중창(重創)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좌우 양단에 1칸씩을 늘린 것 같고,

 

그 부분만은 공포(拱包)의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의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전에는 맞배지붕 건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주두(柱頭) 뒤의 두공(頭工)으로써 대들보를 받도록 한 후 그 보머리가 그대로 길게 나와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직접 받고 있다. 제일 밑에 있는 첨차(__遮)는 기둥머리에 꽂혀 있는데, 이는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에서 볼 수있는 수법이다. 그러나 그 첨차의 형태는 오히려 다포(多包)집 계통의 것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조선 초기의 건축이지만 몇 번에 걸친 수리 때문에 원형이 손상된 부분이 많다.
7. 망양정(望洋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해안에 있는 정자(亭子).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望洋)해수욕장 근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곳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은 시, 전해오고 있다. 조선조 숙종(肅宗)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보고 이 곳이 가장 낫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 關東第一樓)라는

 

글씨를 써보내 정자에 걸도록 했다. 고려시대에는 정자가 이 곳 북쪽 망양리(望洋里)현종산에 있었으나 1858년 현재의 자 리로 옮기고 1958년 고쳐지었다. 주위 송림에 둘러싸인 언덕 아래로 백사장이 있고 왕 피천(王避川)이 바다로 흘러가며,

 

멀리 망망대해가 정자에서 한 눈에 들어온다. 옛부 터 해돋이와 달구경이 유명하며,

 

조선조에는 숙종(肅宗)이 친히 이 곳에 들러 아름다 운 경치를 감상했고, 정철(鄭徹)과 김시습(金時習) 등 유명 인사들도 이 곳에 들러 풍 광을 즐겼다. 왕피천이란 의미는 임금이 이곳까지 피난을 한 곳이라고도 하며, 혹은 임 금이 피서(휴양)을 위해서 머문 곳으로 전해온다.
8. 월송정(越松亭)경북 울진군 평해읍(平海邑) 월송리(月松里)에 있는 정자.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 정자이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 (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鄕人)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__ 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를 꼽는 이도 있다.

'문화와 문학 > 문학과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유정 현대문학가  (0) 2012.02.07
연화장  (0) 2011.09.14
최악의 시기   (0) 2010.09.15
첫 걸음   (0) 2010.08.30
갈수없는 길의 교훈  (0) 201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