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방사'라는 절 이름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신의 딸을 구해준 두운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스님이 공부하던 소백산에 절을 지어 그 절의 이름을 '기쁠 희(喜)'자와 '방(方)'자를 써서 지었다고 한다.
경상북도(慶尙北道) 영풍군(榮豊郡) 풍기읍(豊基邑) 수철리(水鐵里)에 있는 절이다. 고운사의 말사(末寺)로,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두운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고도 850m에 창건한 사찰이다. 절 입구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림이 빽빽이 우거져 있으며, 절 바로 밑에 내륙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와 숲이 펼쳐진다.
1568년(선조 1)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1953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226)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책이다.
불경언해서로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권 머리에 훈민정음 판 15장, 30면이 얹혀 있어서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두운조사와 호랑이
희방사(喜方寺)에는 창건 전설이 있다. 선덕여왕 12년(643년) 두운(杜雲) 조사가 수행을 하기 위해 태백산 심원암에 거처하다가 다시 지금의 희방사가 있는 곳으로 옮겨왔다. 지금도 희방사는 울창한 숲 속에 있지만 당시에는 더욱 더 인가로부터 먼 숲 속이어서 산짐승들만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수도에 열중하고 있는데, 암 호랑이 한 마리가 와서 괴로운 시늉을 하였다. 호랑이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여, 부엌에 검불을 깔고 출산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얼마 안 있어 호랑이는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조사는 겨울이 다 가도록 돌봐주었고, 봄이 되자 호랑이는 새끼를 데리고 떠나갔다.
얼마 있다가 다시 암 호랑이가 왔는데, 역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은비녀가 목에 걸려 있었다. 사람을 잡아 먹다가 비녀가 목에 걸린 것이었다. 조사는 크게 꾸짖고 비녀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것을 먹지마라고 하였다.
며칠이 지났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호랑이가 산돼지를 한 마리 물어다 놓았다. 은혜를 갚기 위해 잡아온 것이 분명했으나, 수행하는 중이 그런 것을 먹을 수 없다고 하자, 못마땅한 눈치를 보이면서 갔다. 다시 며칠 지나 이번에는 호랑이가 예쁜 처녀를 물고왔다. 처녀는 기절해 있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고 처녀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경주 계림에 사는 호장(戶長) 유석의 딸인데, 결혼식을 치른 뒤 막 신방에 들려는 순간 잡혀 왔다고 하였다.
조사는 부모가 큰 걱정을 할 것이라 짐작하고 처녀를 남장하여 경주로 데려갔다. 유석은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돌아오자 매우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 딸을 데리고 살아라고 하였다. 조사는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몇 달간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여 조사는 몇 달간 유석의 집에 머물렀다.
몇 개월 지난 뒤에 나귀를 타고 수도하던 곳으로 와보니 초막은 단청이 잘 된 법당으로 변해 있었다. 유석이 은혜를 갚고자 조사가 자기 집에 머무는 몇 개월 동안 법당을 새로 지은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족에 기쁨을 주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희방사라고 했다고 한다.
지장전 안에는 두운 조사의 영정이 걸려 있다. 물론 위의 전설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전설이다. 두운 조사와는 관련이 없다. 아마 다른 전설이 두운 조사의 전설과 결합되었을 것이다. 호장이라는 벼슬은 고려초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 들어서 지방을 관리하기 위해 지방 호족을 호장으로 삼았다. 일종의 지방 자치인 셈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체제가 강화되자 호장은 아전으로 전락한다.
희방사로 오르는 길은 다음과 같다.
희방매표소를 지나면 국립공원소백산사무소가 있고, 사무소를 지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자연학습탐방로가 있다. 소형차량은 다리를 건너 500m정도 더 올라가면 약20대 정도의 소형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이 곳은 여름에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장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영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마지막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한쪽에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위쪽으로 과거 상가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자리에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야생화단지를 조성하여 놓았다.
야생화단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는 길은 희방사 스님이 이용하는 차량출입로이고, 우측으로 난 길이 탐방로의 입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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