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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4)

泉玟 김동석 2007. 4. 9. 15:50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로 유추해본 고조선 세력 범위도.

한국에서는 강원도 춘천시 신매리에서 기원전 1510년쯤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가 출토됐다는 보고(최몽룡 외, ‘동북아 청동기시대 문화연구’, 주류성, 2004)가 있으나 이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것보다 1000년 정도 후대의 것이다.

중국문화와 중국인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황하 중류에서 생겨났다. 이곳에는 농업을 하는 신석기 후기 문명이 있었는데 이 세력을 이끈 것은 전설로 전해오는 3황5제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황하의 범람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3황5제는 둑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3황5제는 이 지역을 다스린 통치자였지만 그들의 왕위는 세습되지 않았다.

 

고조선은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시작

 

기원전 2070년쯤 이곳에서 우왕(禹王)이 순(舜)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하(夏)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세습왕조이다.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세습왕조는 그렇지 않은 왕조보다 권력이 강하다. 학자들은 하나라가 순을 비롯한 3황5제가 다스리던 나라와 달리 청동기 문명을 열었기 때문에 세습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은 하나라보다 300년 정도 앞서 세워졌으면서 황하의 청동기 문명과 다른 청동기 문명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 북쪽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면, 중국 내몽고자치구에서 중국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하가점 하층문화’에 주목하게 된다.

중국 요녕성을 가로지르는 요하(遼河)는 요녕성 북부 지역에서 동요하와 서요하로 갈라진다. 이중 서요하의 물줄기가 내몽고자치구로 뻗어 올라가는데, 서요하에 합류되는 한 지류가 ‘노합하(老哈河)’이다. 노합하는 지금 적봉(赤峰)시가 있는 지역에서 ‘영금하(英金河)’를 지류로 받아들인다.

영금하가 노합하로 막 합수되는 지점쯤에 ‘홍산(紅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기원전 3500년쯤에 형성된 신석기 후기 유적이 대량 발굴되었다. 그리고 홍산에서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곳인 ‘하가점(夏家店)’에서는 기원전 2400여 년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하가점에서는 여러 시대의 유물이 발견됐는데 기원전 2400여 년경에 제작된 청동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퇴적작용으로 아래층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홍산지역에서 꽃핀 신석기 후기 문명을 ‘홍산문화’, 하가점 하층에 꽃폈던 청동기 문명을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름지었다.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가 발견됨으로써 황하를 비롯한 4대 강가에서만 문명이 일어났다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론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하가점 하층문화를 이끈 세력은 황하 중류에서 일어난 하나라보다 먼저 청동기시대를 열었다. 고고학적 연구를 토대로 고조선의 자취를 좇는 학자들은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를 고조선의 출범과 연결시키고 있다.

즉 홍산문화를 환인이 이끄는 신석기 후기의 국가체로 보는 것이다. 이 국가체에서 청동기를 개발한 환웅이 3000여 무리를 이끌고 하가점 지역에서 신석기 후기 문명 단계에 있는 곰족과 결혼동맹을 맺고 새로운 국가체를 세운다. 환웅은 곰족 여성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단군으로 명명해 왕위를 넘겨줌으로써, 왕위를 세습하는 고조선을 만들게 했다….

하가점 지역은 평야지대이니 이곳을 평양으로 명명할 수 있다.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단군은 아사달-평양-백악산 아사달-장단경-아사달로 옮겨갔다가, 아사달에서 산신령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이 도읍지를 여러 번 옮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고조선이 도읍지를 옮길 때마다 평양이라는 이름이 따라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태백산으로 표기한 흰 바위산은 어떤 산일까. 하가점 동쪽으로 150여 km쯤 떨어진 곳엔 산맥에 가까운 ‘노노아호산(努魯兒虎山)’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 다시 200여 km 떨어진 곳에 역시 산맥 형태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이 있다. 노노아호산과 의무려산은 해발 500~700m 높이이지만, 평야지대에 있는 까닭에 우뚝해 보인다.

이 산은 고대인을 불러들이는 신령스러운 장소였을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를 시작한 세력은 이 산에 올라가 성스러운 나무(神檀樹) 밑에서 청동기 문명을 가진 신시가 열렸음을 선포할 수가 있다.

출처 :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글쓴이 : 개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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