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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泉玟 김동석 2016. 10. 15. 19:57

황톳길 >

―김지하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샆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메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작품

타는 목마름으로

이 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타는 목마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는 ‘신새벽’이라는 시간과 ‘뒷골목’이라는 공간이 갖는 복합적 의미 구조를 통해 화자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시인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쓰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소망과 이를 성취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연은 ‘발자국 소리’에서부터 ‘탄식 소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소리의 중첩을 통해 이 시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3연에서 화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면서 뒷골목의 나무판자에 ‘민주주의여 만세.’ 라고 쓴다. 이 구절은 그 어떤 산문적 서술보다 뚜렷하게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아울러 시대의 아픔을 넘어 ‘저 푸르른 자유’로 달려가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천재(김윤식), 상문

오적

이 시는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 사설 등을 변용하여 쓴 ‘담시(譚詩)’라는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담시(譚詩)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오적(五賊)’이라고 못박은 사람들 - 재벌, 국회 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 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시인은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제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을 통해 새로운 통치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무화과

이 시는 비록 화려하거나 남들의 눈에 띄게 요란하진 않아도 '열매' 속에서 '속 꽃'을 피우며 결실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아름답게 여기는 시인의 세계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1연에서 화자는 과음을 했는지 구토를 한 후,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무화과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화자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친구에게 자기에게는 화려하고 좋은 젊은 시절인 '꽃 시절'이 없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은 마치 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자의 친구는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열매 속에서 '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것일 뿐, 오히려 화자는 성숙함 속에 화려하고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한다.

3연에서 화자와 친구는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걷지만, 그곳이 '검은 개굴창가'이고 그 옆으로 '검은 도둑괭이'가 지나가는 것으로 그려 내어, 여전히 현실 상황은 암울하고 힘들다는 것을 다시 환기시키며 시를 끝맺는다.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독재 정권 박정희와 가장 치열하게 맞섰던 시인 김지하의 시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인의 풍자 정신과 비판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장시(長詩)이자 보기 드문 담시(譚詩)이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시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 이야기와 노래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담시(譚詩)라고 불린다. 독특한 판소리 어조로 구한말 동학 교주수운 최제우의 득도(得道)와 포덕(布德) 활동, 처형 장면 등을 들려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최제우가 중심이 되는 동학 농민 운동은 기울어져 가는 나라와 근대 제국주의적인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세상을 개혁하고 구제하려는 혁신적인 운동으로 소개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사형되는 장면에서는 최제우의 목구멍에서 온갖 중생, 바닥 쌍것들, 팔도 농투산이들이 기어 나오는데, 그들이 형장을 뒤집어엎는 장면은 “춘향전”의 어사 출두 장면을 연상케 한다.

민중적인 존재들이 목이 잘려 나간 그 구멍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세상을 휩쓸어 버린다는 것은 유쾌한 전복으로서 축제적인 분위기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러한 구한말의 시대 상황과 자신이 살고 있는 198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연결지어 사회 현실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고 군사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이자, 냉전 체제의 희생물이 되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의 대치 상황에 대한 비판까지 암시하고 있다. 즉, 이 시는 구한말의 국내의 정세가 다시 반복되고 있는 듯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 길

이 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먹고살 길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야만 했던 농촌 젊은이들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도 그 시절의 여느 젊은이처럼 농촌을 등지고 '몸 팔러' 서울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길이 목마르고 팍팍하기만한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분꽃과 밀 냄새로 비유된 고향의 기억은 꿈꾸다가도, 별빛을 따라서라도 매일 밤 오고 싶은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 또한 그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간다/울지 마라 간다'는 그를 배웅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화자 자신을 향해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구성상으로는 '간다/울지 마라 간다' 구절의 단호함과 맞물려 '몸 팔러 간다'는 표현이 반복되어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넘어, 농촌을 떠나지 않고서는 먹고 살 수 없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비통함마저 느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