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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淸) 태조(太祖) 누르하치(努爾哈赤)

泉玟 김동석 2007. 3. 26. 19:28

청(淸) 태조(太祖) 누르하치(努爾哈赤: 1559~1626)는 만주족으로 명왕조의 용호장군(龍虎將軍)이었으나 후에 '후금(後金: 청나라)'을 세웠다. 11년간 재위하였으며 전쟁중에 화포에 맞아 68세에 죽었다.(일설에는 악성 종기로 죽었다고도 함) 장지는 심양복릉(沈陽福陵: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沈陽市> 동북쪽 천주산<天柱山> 기슭)이다.

 

누르하치의 선조는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건주좌위(建州左衛: 명대 중엽 이후 지금의 요녕성 신빈현<新賓縣> 경내에 있었음) 도지휘사(都指揮使)에 책봉되었다. 그는 일찍이 도독첨사(都督僉事), 용호장군(龍虎將軍) 등에 책봉되었다.

 

1583년부터 그는 30여년간 여진족 각 부락을 통일하고 군정합일의 팔기제도(八旗制度)와 만주글을 창조하였다. 1616년 정월 임신일(壬申日)에 칸에 올라 국호를 금(金)이라 하고, 도읍을 허투아라(赫圖阿拉: 지금의 요녕성 신빈현 서쪽)에 정한 후, 연호를 '천명(天命)'이라 했다. 역사에서는 이를 '후금(後金)'이라 부른다.

 

1618년부터 그는 요동(遼東)의 명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요동지역을 점령하였으며, 1625년에 심양(沈陽)으로 천도하였다.

 

누르하치는 만년에 이르러 자기 아들 중에 국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후계자를 확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8명의 화석패륵(和碩貝勒: 패륵은 청나라의 종실 및 몽고 외번<外藩>에 수여된 작위. 지위는 군왕<郡王>의 아래 패자<貝子>의 위)에게 공동으로 조정대사를 처리토록 지시하였다.

 

1626년 초에 누르하치는 대군을 이끌고 영원(寧遠: 지금의 요녕성 흥성현<興城縣>)을 공격하였다. 명나라 조정의 영원성(寧遠城) 수비 대장 원숭환(袁崇煥)은 완강히 버티면서 성을 타고 기어 올라가던 만주군을 여러 차례 격퇴시켰으며, 이로써 만주군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누르하치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성 아래에 구멍을 뚫어 성벽을 허물고 입성할 준비를 시켰다. 이를 발견한 원숭환은 서양에서 도입한 화포로써 반격을 가하였다. 이에 누르하치는 포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여 황급히 전군을 이끌고 후퇴하였다.

 

같은 해 7월 누르하치는 상처가 재발하여 청하탕천(淸河湯泉)에서 요양을 하기도 하였으나, 8월에는 상처가 더 심해져 배를 타고 심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그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일찍이 대패륵(大貝勒)과 간통한 적이 있던 왕비 나라씨(納氏)를 목매어 자결토록 명하였다. 8월 경술일(庚戌日)에 누르하치는 상처가 더욱 악화되어 애계보(애鷄堡, 애=雲+愛: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 남쪽)에서 죽었다.

 

청나라가 건국된 후에 누르하치는 태조(太祖)로 추존되었다.


출처 : 북경 3040
글쓴이 : 북경감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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